우체국 사칭? 보이스피싱도 유행따라 바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24일 14시 51분


"삼성병원에서 고객님의 LG카드로 병원비 92만원이 결제됐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면 9번을…."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어딘가 기계적인 여성의 익숙한 목소리. 기기 화면엔 '국제전화'라는 문구와 함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001-0000852' 번호가 뜬다.

한동안 줄기차게 전화하던 "우체국입니다"의 그녀인 모양이다. 2008년 신한카드에 합병돼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LG카드를 들먹이며 나의 정보를 애타게 갈망하는 그 목소리. 바로 보이스피싱이다.

"우체국입니다"나 "경찰청입니다"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 탓일까. 이제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병원비가 무려 92만원이나 나왔다고 경고하며 9번을 누르라고 말한다. 뻔한 사기 수법이지만 쓰지도 않은 카드 결제비에 놀라서 속아 넘어가는 피해자가 있을 지도 모른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이런 전화를 받은 사람은 기자뿐만이 아니었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최근 들어 보이스피싱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확산돼 문의가 줄었지만 아직도 한 달에 1~2건 씩 자초지종을 묻는 고객들의 전화를 받는다"고 말했다.

우체국, 경찰청, 검찰청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언론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지자 그 종류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남아공 월드컵 기간 중엔 "월드컵 이벤트에 당첨되셨습니다"라는 멘트로 현혹하는 보이스피싱이 등장하는 등 유행 따라 수법도 달라지는 추세다.

한국인터넷진흥원 관계자는 "우체국이나 경찰청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 사례가 이미 널리 알려지자 국내의 화제 이슈에 착안해 이를 악용하는 사기범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방영될 당시엔 "선덕여왕이 마련한 이벤트에 당첨됐다"고 전화한 사례가 잇따랐다는 것.

사칭하는 기관의 종류나 내용도 여러 가지다. 이 관계자는 "기획재정부가 거래 은행을 조사 중이라고 하거나 경찰청의 조직폭력배 단속 과정에서 당신 이름이 진술됐다는 등 협박 내용도 가지가지"라고 밝혔다. 환경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환경부도 보이스피싱의 사칭 기관 리스트에 올랐다.

특정인을 타깃으로 삼은 맞춤형 보이스피싱 사례도 적지 않다. 최근 신용불량자가 많다는 점을 노리고 신용회복위원회를 사칭하거나 한국에선 가문을 중요하게 여기는 중년층이 많다는 사실에 착안해 종친회라고 속이는 건수도 있다는 것.

한국인터넷진흥원 측은 "이 같은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은 대부분 중국 등 해외에서 국내의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를 걸기 때문에 추적이나 단속이 쉽지 않다"며 "보이스피싱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수법이 다양해지는 추세인 만큼 전화 이용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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