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9월 6일 연재된 동아일보의 특별기획 ‘대한민국 공존을 향해, 통합을 위한 동아일보의 제언’을 읽고 고건 사회통합 위원회 위원장이 특별기고를 해왔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사회갈등의 폭발이다. 지난 세기에 우리 경제는 압축성장했으나 이에 걸맞은 사회적 인프라가 뒤따르지 못해 압축갈등의 시대에 처한 것이다. 사회갈등은 크게 이익갈등과 가치관갈등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계층갈등 지역갈등이 이익갈등의 대표사례라면, 환경갈등과 세대갈등은 가치관갈등의 대표사례다. 그리고 이념갈등처럼 이익갈등과 가치관갈등이 결합된 ‘복합갈등’ 또한 존재한다.
물론 사회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사회를 이루는 개인 및 집단 간에는 언제나 관심과 이익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갈등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에 있다. 지난해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갈등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27%에 이르고, 갈등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다.
특히 사회갈등의 과도한 분출은 우리 사회의 소통과 통합을 저해하는 일차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서 선진사회로 가는 게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국가 목표라면, 소통과 통합의 제고는 선진사회의 기본 조건이다. 지난해 필자가 사회통합위원회에 참여한 것도 소통을 활성화하고 통합을 증진시키는 데 미력하나마 기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소통과 통합의 방향에 대해서는 7월부터 동아일보가 마련한 기획특집 ‘대한민국, 공존을 향해’로부터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조사와 실험 등 여러 방법으로 우리 사회 갈등의 실상을 해부하고 통합의 해법을 모색한 것은 더없이 인상적이었다. 이 같은 시도들이 축적돼 언론도 사회적 갈등을 증폭하기보다는 공약수를 찾고 공존을 모색하는 공공 기제로 기능하기를 바라며, 동아일보가 당당히 그 선봉에 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평소에 나는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거시와 미시를 아우르는 입체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먼저 거시적 수준에는 네 가지 접근이 요구된다.
첫째, 정책적 접근이다. 이익갈등의 경우 구체적 정책대안으로 접근하면 생각보다 쉽게 완화·해소할 수 있다. 즉 갈등의 사회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사회양극화를 해소하는 일자리 중심 정책, 대·중소기업 상생, 사회안전망 확대 정책 등을 추진하는 것이다. 가치관갈등의 경우 경제주의 대 생태주의, 개인주의 대 공동체주의 등의 상이한 가치관의 공존을 승인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정책적 해법이 중요한 것은 정책을 통한 문제 해결이 소통과 통합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둘째, 방법론적 접근이다.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는 규범적 당위성을 강조하기에 앞서 대화와 타협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사회협약(social pacts)’과 ‘제3의 신뢰기구’ 등이다. 예를 들어 노사갈등에서 사회적 협약이 실효성 높은 절차라면, 제3의 신뢰기구는 대화와 타협을 위한 주목할 만한 수단이다. 특히 진영논리로 쉽게 비약해 버리는 우리 사회 현실을 고려할 때 프랑스 공공토론위원회(CNDP)와 같은 제3의 신뢰기구의 도입은 진지하게 검토할 만하다.
셋째, 시스템적 접근이다. 소통과 통합이 제대로 정착하려면 제도적 해법 또한 중요하다. 거버넌스(governance)가 적극적으로 요청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거버넌스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사후 대처보다 사전적 갈등예방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정부-민간 전문가-시민단체 간의 정책 네트워크를 모색해야 한다. 더불어 시민 합의 회의, 공론조사 등을 포함한 사회적 합의 형성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통합위원회에서는 ‘공공갈등의 예방과 해결에 관한 법률(안)’을 성안하여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넷째, 문화적 접근이다. 단시간 안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저(底)신뢰 사회’로서의 특징을 안고 있다. 저신뢰를 고(高)신뢰로 바꾸기 위해서는 근본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합리적 의사소통을 통해 문제해결에 접근하는 ‘대화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가치판단보다는 사실판단에 주력하는 공론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더불어 계층 간 위화감을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러한 거시적 접근과 더불어 미시적 대응도 추진해야 한다. 미시적 대응이란 대학 시간강사 같은 개별 갈등 사안에 따른 ‘맞춤형 정책 대안’을 발굴하는 것을 말한다. 당면한 쟁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익갈등의 경우 물질적 상호양보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도출해야 하며, 가치관갈등의 경우 서로 다른 가치 및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다원적 세계관을 승인해야 한다. 또한 정권 교체기 인사 문제와 같은 예민한 사안의 경우,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분야는 임기를 철저히 보장하는 반면 정무적 성격이 두드러지는 분야는 엽관제(spoil system)의 도입을 긍정적으로 고려해 볼 수도 있다.
올해는 식민지 시대부터 민주화 시대에 이르는 지난 100년의 우리 현대사를 돌아보고 새로운 100년의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뜻 깊은 해다. 선진국으로의 도약은 더 미룰 수 없는 한국 사회의 가장 중대한 과제다. 소통과 통합이 진정한 선진사회로 가는 사회적 지반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더 많은 소통’, ‘더 넓은 통합’을 위해 정부는 물론 시민사회 또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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