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야화]KBS 교양프로그램의 새로운 도전 ‘명작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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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0일 19시 12분


● 교양에 대한 새로운 장르적 해석 '교양 토크쇼'
● 재미와 교양이란 두 마리 토끼…소재보다는 게스트들의 소화능력

KBS 1TV 명작 스캔들.
KBS 1TV 명작 스캔들.

전세계 공영방송의 고민의 지점은 어찌보면 단순 명쾌하다. 이른바 TV라는 대중매체가 '바보상자'라는 불명예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강박감이 바로 그것이다.

하루에도 4시간 이상 TV를 시청하는 대중이 인구의 50%를 넘어서는 현대사회에서, TV가 재미와 더불어 교양과 정보를 적절하게 줄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공영방송은 국민의 세금이 투여돼 자극적인 '눈요기'중심 방송과의 경쟁부담을 조금이나마 경감받는 특혜를 누린다.

사실 공영방송까지 의미 없는 시청률 경쟁에 매몰된다면 국민의 세금으로 방송을 운영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교양'을 높인다고 미디어의 형식적 본질인 '재미'를 포기할 수도 없는 일. 공영방송 PD들이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명작스캔들' - 기로에 선 KBS, 예술버라이어티 선보이나?

10월19일 화요일 밤 11시30분. 조금은 특이한 형태의 교양프로그램이 첫 선을 보였다.

이번 공중파 가을개편에서 가장 눈에 띈다는 '명작스캔들'이다.(아직은 파일럿 프로그램이다) 제목에서부터 교양과 재미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KBS의 야심이 느껴지는 기획이다.

'명작스캔들'은 명작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교양의 핵심인 클래식(Classic) 작품을 중심소재로 다룬다. 전문 교양서적에는 나와 있지만 우리가 모르고 있던 명작의 숨겨진 매력과 미처 알지 못했던 위대함을 캐내 시청자들에게 전해준다는 취지다. 단순하게 고전을 소개하는 차원에서 한 발짝 진일보한 셈이다.

방송에서 교양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풀리지 않는 영원한 숙제다(동아일보 DB)
방송에서 교양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풀리지 않는 영원한 숙제다(동아일보 DB)

19일 첫 방송으로 베토벤의 '운명' 표절시비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담긴 비밀을 풀어냈다.

최후의 만찬에 묘사된 식사 음식이 성서적 관점이 아닌 '장어요리' 같은 다빈치가 즐겼던 지극히 르네상스적인 소재였다는 것. 또한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첫 두 소절이 사실은 그의 할아버지 오르간 작품에서 모티브를 따왔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다뤘다.

방송이 나간 직후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세계인의 교양으로 꼽히는 서양미술과 클래식 음악을 토크쇼로 풀어낸 신선한 시도에 찬사를 보낸다는 평가가 다수를 이뤘다.

특히 '스캔들'에 얽힌 비밀을 풀기 위해 투입된 다큐멘터리적인 취재기법이 인상적이었다. 만찬 음식이 '장어요리'라는 이론을 제기한 학자를 만나기 위해 직접 미국 매사추세츠에 날아가 인터뷰를 담아왔고, 이탈리아 요리사가 르네상스식으로 만든 장어요리를 스튜디오로 들고 나오는 정성을 더했다. 뿐만 아니라 KBS 특수영상 팀까지 동원돼 명화를 세밀하게 분석하기도 했다.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의 스캔들을 파헤치기 위해 서울대 작곡가 학생들의 관점과 시민 패널들의 의견까지 들어본 것도 신선한 접근 방식이었다. 이는 이제는 우리만의 문화적 역량으로 '서구 걸작'을 분석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부수적으로 전달하는 효과를 낳았다.

어찌보면 인터넷 신지식을 가공해 맛깔나게 풀어낸 '스폰지'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도 보였다. 빠르고 다채롭게 정보를 펼쳐 놓아 시청자들에게 쉽고 흥미롭게 다가섰다.

게다가 비슷한 시간대에 방영된 SBS '강심장'과 KBS '여유만만'이란 토크쇼는 뻔한 연인들의 사담이 주류를 이뤘기 때문에 '명작 스캔들'의 신선함은 더욱 돋보였다는 평가다.

▶예술 토크쇼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재기 넘치는 전문가 필요"

이를 토크쇼로 풀어낸 것도 흥미로운 접근법이었다.

사실 그간 KBS가 주도해온 예술과 전문지식 프로그램은 토크쇼 중심이었다. '책책책 책을 말하다' '낭독의 발견' '클래식 오디세이' 등의 고급문화 프로그램은 주로 해당분야 전문가들을 내세워 대화를 중심으로 풀어나가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 같은 전문적인 대화만으로는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가 어렵기 때문에 시청률이 고작 1~3%에 머물러 왔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명작스캔들은' 중심패널로 강한 입담으로 유명한 가수 조영남과, '여가전문가'로 알려진 김정운 명지대 교수를 초빙했다. 교양 토크쇼라는 컨셉을 강화한 셈이다.

전혀 새로운 형식의 문화예술 버라이어티 ‘명작스캔들’
전혀 새로운 형식의 문화예술 버라이어티 ‘명작스캔들’

또한 젊은 게스트로는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한 2007 미스코리아 이지선, 클래식 음악계의 아이돌 이엘 등이 초청했다. 예술분야에 가까운 문화계 아이돌을 포섭해 재미또한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단 1회 방영만으로 그 성과를 논하기 어려운 일. 다만 '예술 버라이어티'를 선언한 프로그램의 게스트를 섭외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제작진의 고충이 그대로 전해졌다.

음악과 미술가로 알려진 조영남 씨와 김정운 교수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이들이 비록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해도 딱히 다른 대안을 내놓기도 쉽지가 않다. 그게 바로 빈약한 우리 교양시장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앞으로 제작진이 어떤 흥미로운 소재를 심층 취재해 풍성한 얘깃거리를 펼쳐내는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최근 KBS는 뉴스는 물론이고 드라마와 교양프로그램에까지 변화의 바람이 거세 보인다. 특히나 교양부분의 변화에는 시청자들의 오랜 기대가 담겨 있다.

'명작스캔들'은 우리나라 공영방송이 교양과 재미를 동시에 전달할 능력을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이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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