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선동열과 정삼흠이 ‘음주 투구’ 맞대결 벌인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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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2일 14시 27분


해태 타이거즈 시절의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시절의 선동열.
술 얘기가 나왔다 하면 야구팬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회자되는 일화가 있다.

선동열(현 삼성 감독)과 정삼흠이 '음주 투구' 맞대결을 벌인 일이다.

'음주 운전', '음주 방송' 그리고 '취권' 등은 들어봤어도 '음주 투구'라니…. 사연은 이렇다.

1985년부터 1995년까지 한국프로야구는 '국보급 투수' 선동열의 세상이었다. 해태의 에이스로 한국시리즈 6번의 우승을 이끌면서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에 3번이나 등극한 선동열.

그의 전성기에 모든 팀은 선동열을 꺾기 위한 갖가지 비책을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1987년 9월1일. MBC 청룡과의 잠실 원정경기를 하루 앞두고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해태 타이거즈의 에이스 선동열. 그는 고려대 입학 동기생인 MBC 투수 정삼흠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고 외출할 채비를 갖췄다.

다음날 경기에 선발로 나서야 했지만, 시즌 중 경기장밖에서 만날 기회가 좀처럼 없던 동기의 호출이니 냉정하게 거부할 수가 없었던 것.

커피숍에서 만나 처음에는 주스를 홀짝거리던 정삼흠은 갑자기 "나도 내일 선발 등판하는데 술이 너무 땡긴다"며 "서로 선발로 나서니 공평하게 술 한 잔씩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선동열은 흔쾌히 응했고 이렇게 시작된 둘의 음주는 다음날 동이 터올 때까지 계속됐다.

사실 정삼흠이 이날 선동열을 술자리로 불러낸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정삼흠은 '막강한 선동열을 술이라도 먹여서 일단 무너뜨리라'는 구단 관계자의 지시를 받고 '비장한 각오'로 출전했던 것.

당시 MBC는 3위를 달리며 1위 삼성, 2위 롯데와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이고 있어서, 1승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정삼흠은 저녁을 든든히 먹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선동열을 만났고, 화장실에 가서 틈틈이 먹은 술을 뱉어내면서 컨디션을 조절했다.

경기 당일. 선동열과 정삼흠은 나란히 선발 등판했다. 그런데 경기가 진행되면서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선동열은 갈수록 힘을 내며 0의 행진을 이어간 반면, 그런대로 잘 버티던 정삼흠은 7회 대거 3점을 내주는 등 5실점하며 무너진 것. 이날 해태는 5-0으로 승리했고, 선동열은 시즌 10승 고지에 올랐다.

경기 후 MBC 라커룸을 찾은 선동열은 씩 웃으며 정삼흠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 우리 다음에도 또 한잔 하자. 광주에 오면 내가 살게."
LG 트윈스 시절의 정삼흠.
LG 트윈스 시절의 정삼흠.

2010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에서 롯데와 삼성을 상대로 10연전을 치룬 두산.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두산의 김경문 감독에게 가장 아쉬웠던 점은 아마 특급 마무리 이용찬의 부재였을 것이다.

올 시즌 25세이브를 올리며 세이브왕 등극이 유력시됐던 이용찬은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어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이용찬은 현재 일본 미야자키 교육리그에서 반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야구 계에서는 음주 관련 사건이 종종 터진다. 이 때문에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 팀에 막대한 피해를 주기도 한다.

선동열 감독처럼 술도 세면서, '국보급' 활약을 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이 정도의 초특급 선수가 아니라면, 아예 금주를 하는 게 내년시즌 야구 계에서 음주관련 사건 사고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다.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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