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김동성 양태영이 금메달 빼앗긴게 영어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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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일 11시 47분


금메달을 박탈당한 뒤 허탈한 표정의 김동성.
금메달을 박탈당한 뒤 허탈한 표정의 김동성.
김동성과 양태영의 '금메달 박탈 사건'. 최고의 기량으로 분명히 1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황당한 판정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놓친 이 사건을 스포츠팬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일어났고, 이후 2년 만인 2004년 아테네 하계올림픽에서 두 번째 사건이 발생했다.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두 번 다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당시의 상황을 들춰봤다.

우선 2002년 2월21일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벌어진 일.

이 경기에서 한국의 김동성은 압도적인 레이스를 하면서 1위로 골인했다. 당연히 금메달을 차지하게 된 김동성은 태극기를 들고 환호성을 올리며 빙판 위를 신나게 돌았다.

그런데 웬 걸. 잠시 후 심판진은 김동성이 '임피딩(Impeding·방해)'을 했다며 실격 판정을 내렸고, 금메달을 2위로 들어온 안톤 오노(미국)에게 내줘야 했다.

당시 상황은 이랬다. 마지막 반 바퀴를 남겨놓고 김동성과 오노가 나란히 1, 2위를 달리고 있었고, 이때 오노가 직전 주로에서 안쪽으로 파고들며 추월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를 간파한 김동성은 곡선주로로 진입하면서 안쪽으로 들어오려는 오노를 견제했고, 이에 오노는 '김동성이 고의로 막았다'는 의미를 심판진에게 알리려는 듯 과장되게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러나 오노는 결국 김동성을 따라잡지 못하고, 김동성이 1위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그런데 심판진에게서 나온 판정은 '김동성의 임피딩' 파울. 임피딩은 상대 선수를 몸이나 팔로 밀어 넘어뜨리는 게 대표적인 것. 또 뒤 주자가 추월하는 경우에 앞 선수는 레이스에서 우선적인 권리를 갖고 있으며 이때 뒤 주자가 앞 선수에 신체적인 접촉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쇼트트랙 규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심판진의 농간에 따른 엉터리 판정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결국 김동성은 금메달을 되찾지 못했다.

그리고 2년 6개월 후인 2004년 8월19일 열린 2004 아테네 올림픽 체조 남자 개인종합 결승.

한국의 양태영은 첫 종목인 평행봉에서 완벽한 기술을 보이며 10점 만점의 연기를 펼쳤다. 그러나 양태영의 평행봉 스타트 밸류(출발점수)는 난이도 E로 가산점 0.2점이 주어져야 하지만 심판진이 이를 가산점 0.1점인 난이도 D로 잘못 적용하는 바람에 9.9점을 주고 말았다.
심판진의 오심으로 금메달을 놓친 양태영.
심판진의 오심으로 금메달을 놓친 양태영.

결국 양태영은 종합점수에서 미국의 폴 햄보다 0.049점이 뒤져 금메달을 내주고, 동메달에 머물러야 했다.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심판진은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했다. 하지만 국제체조경기연맹은 "번복은 있을 수 없다"며 양태영의 금메달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근 체육회 고위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우연히 이 두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이 고위 관계자는 "두 사건 모두 영어를 잘 못해서 금메달을 억울하게 놓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한국 선수단 관계자들이 영어로 강력하게 항의를 했더라면 판정이 뒤바뀔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체육 관계자들이 국제어인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해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차원에서 체육계에 영어를 비롯해 외국어를 잘 구사하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명망 있는 인사가 한 말이긴 하지만 영어로 항의를 안 했다고 해서 금메달을 놓쳤겠는가. 그리고 당시 코칭·스태프나 선수는 규정상 현장에서 심판판정에 항의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앞으로는 영어를 잘하는 선수 출신 체육인이 많이 늘어날 것 같고, 이에 따라 영어로 불이익을 보는 일이 없어질 것 같아 희망적이다.

메이저리그에서 17년째 활약하고 있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도 있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엔진' 박지성도 있고, 유창한 독일어 실력에 더해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뛰고 있는 차두리도 있고, 미국프로골프(PGA)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활약 중인 최경주 양용은과 박세리, 박지은 등 한국 낭자군도 있으니 말이다.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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