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석영]디스커버리호의 마지막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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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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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기구가 필요하여 문구점을 방문하는 동안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문구점 주인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문구점 사모님은 말했다. “뭐라고?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씩 도냐고? 아님 1년에 한 바퀴씩 도냐고? 그런 복잡한 걸 왜 엄마한테 물어. 아빠 바꿔줄게.”

물건을 골라주던 사장이 전화를 받았다. “야,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씩 돌면 어지러워서 어떻게 사냐. 1년에 한 바퀴겠지. 바빠. 끊어.” 물론 사장이 틀렸지만 내가 천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랍시고 섣불리 정정하기엔 부모의 권위가 염려되었다. 그래서 물건을 사고 슬그머니 나왔다.

지구는 하루에 한 번씩 스스로 도는 자전을 한다. 그에 따라 지구 표면의 인간은 음속보다 빠른 최고 초속 460m로 공간을 움직인다. 지구는 또 1년에 한 번씩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그에 따라 우리가 갖는 속력은 초속 20km. 태양은 은하 중심을 2억 년에 한 번씩 돈다. 속력을 계산하면 초속 250km에 육박한다. 따라서 우리가 지구 표면에 붙어서 초속 460m로 (지구)회전그네를 도는 중에, 이 (지구)회전그네는 초속 20km로 태양을 돌고, 그 태양은 초속 250km로 은하 중심을 도는 상황이다.

독자의 정신건강을 위해 은하계 밖의 더 복잡한 사정은 무시하기로 하자. 어릴 적에 가 본 놀이동산에, 돌아가는 바닥에 설치된 따로 도는 컵 속에 사람이 앉아서 타는 기구가 있었다. 바로 그 형국이다. 우리 머리가 안 아픈 게 이상할 지경이다.

이런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편안히 사는 이유는 인간이 이 모든 효과를 아우르는 중력장에 적응하여 태어났기 때문이다. 시속 300km로 달리는 KTX 안에서 편안히 자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인류는 우주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론 매우 독특한 지구환경 속에서 복잡한 힘의 영향에 적응하며 산다. 과학자들은 이런 특이한 지구상황을 벗어나면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으로 대표되는 우주의 힘이 어떻게 작용할까를 궁금해한다. 예를 들어 지구중력에 반응하여 뿌리를 내리는 식물은 우주공간에선 어떻게 자랄까?

개구리 우물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류는 우주를 개척한다. 더 멀리 더 높이 날기 위해 더 큰 로켓을 소모품으로 만들어 사용하던 인류가 우주왕복선을 개발하여 사용한 지 29년이 흘렀다. 미국 항공우주국은 컬럼비아호 챌린저호 디스커버리호 애틀랜티스호 인데버호, 이렇게 다섯 우주왕복선을 만들어 우주여행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우주왕복선은 전문 우주비행사가 아니라도 탈 수 있을 정도로 비행이 순탄하고, 원하는 만큼 우주공간에 머물 수 있으며, 편안하게 출발점으로 귀환한다는 면에서 미래 우주여행의 유일한 선택이다. 챌린저호는 1986년에 발사 직후 폭발했고 컬럼비아호는 2003년 귀환 중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남은 왕복선 중 허블 우주망원경 설치 등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디스커버리호가 이번 주에 최후의 비행을 한다. 이 여행이 무사히 끝나면 일반인은 디스커버리호를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니 나도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우주왕복선이 미래 우주계획의 대안 없는 유일한 희망이긴 하지만 현재의 왕복선은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내년 2월로 계획된 인데버호의 최후의 발사를 마지막으로 ‘독수리 5형제’ 시대는 막을 내린다. 하지만 개구리 우물을 벗어나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우주운행의 법을 알고자 노력하는 인류는 땀과 지혜를 모아 새로운 도전을 끊임없이 할 것이다.

이석영 연세대 교수 천문우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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