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이승엽이 ‘국민 남동생’ 박태환에게 배워야 할 한가지는?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19일 11시 20분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은 이승엽(34). 그는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까.

최근까지 '국민타자', '아시아 홈런왕', '라이언 킹', '승짱' 이라는 명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이승엽.

하지만 극심한 부진 속에 지난 16일 5년 동안 몸담았던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로부터 방출 통고를 받아 이제는 '야인(野人)'이 되고 말았다.

그는 "앞으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좀 더 뛰며 반드시 명예회복을 하겠다. 이후 마지막 1년을 국내 무대에서 선수 생활한 뒤 은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일본 잔류 결심을 굳힌 이승엽. 그러나 요미우리에서 그동안 약 30억엔(약 410억원)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그가 몸담을 팀을 찾기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그동안 받았던 엄청난 몸값이 이적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승엽은 올해에만 6억5000만엔(약 89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봉 4000만엔(약 5억 5000만원) 정도만 해도 수준급 타자로 대접받는 상황이고 보면 이승엽은 웬만한 타자 10명 이상의 몫을 받은 셈.

일본야구 전문가들은 "이승엽이 연봉을 지금보다 10분의 1 정도로 줄이더라도 갈 만한 팀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며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퍼시픽리그에서 팀을 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퍼시픽리그의 세이부와 니혼햄, 라쿠덴을 이승엽이 연봉을 대폭 낮춰서 가면 바로 뛸 수 있는 팀으로 꼽았다. 이들 3개 팀은 장타력을 갖춘 왼손 타자가 전력 보강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승엽은 '명예회복'을 일본 잔류의 이유로 밝혔지만, 사실 이승엽은 이미 '돈'은 물론 '명예'까지 모두 거머쥔 최고의 스타다.

한국 프로야구 삼성에서 뛰던 1999년에는 54홈런을 치며 '국민타자'의 칭호를 얻었다. 한국 야구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동메달,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데 주포를 맡았다.
2008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한 이승엽.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2008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한 이승엽.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2003년에는 56홈런을 터뜨려 '아시아 홈런왕'에 등극했고,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이 4강에 오르는 데 4번 타자로 활약했다. 또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일본과 쿠바전 등에서 홈런을 쏘아 올려 한국야구가 금메달을 차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2004년 일본 지바 롯데로 진출해서도 첫해에는 14홈런에 그쳤지만 2005년에는 홈런 30개를 기록하며 팀의 일본시리즈 챔피언 등극에 큰 역할을 해냈다.

요미우리에서 2006년부터 뛰기 시작한 이승엽은 그해 홈런 41개를 기록했고, 2007년에는 30홈런을 쏘아 올렸다.

이승엽은 왼손 엄지 인대 통증이 본격화된 2008년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그해 45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4푼8리, 8홈런, 27타점에 머물렀고, 4월부터 102일 동안 2군 생활을 하기도 했다.

2009년에도 타율 2할2푼9리, 16홈런, 36타점으로 고전했고 올 시즌에는 1할6푼3리, 5홈런, 11타점으로 최악의 성적표를 남겼다.

전문가들은 "이승엽이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을 정도로 올해 최악의 부진을 보였다. 그러나 주전으로 출장이 보장된다면 언제라도 20홈런 이상은 충분히 뽑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승엽이 과연 일본에서 아시아 최고 거포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3관왕에 오르며 부활한 '국민 남동생' 박태환(21·단국대)에게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박태환은 지난해 로마세계선수권대회에서 노메달이 그친 뒤 재기를 다짐하며 이렇게 얘기했다.

"중학교 때의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 정말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하겠다"고….

경북고 졸업 당시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1995년 프로야구 삼성에 입단한 이승엽.

프로에는 투수로 입단했지만 팔꿈치 부상 때문에 타자로 전향하기 위해 하루에도 수백 번 씩 배트를 휘둘렀던 바로 그 때, 그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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