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홍수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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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8일 10시 38분


1974년 밴텀급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을 때의 홍수환.
1974년 밴텀급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을 때의 홍수환.
"홍·수·환" 하면, 중장년 남성 스포츠팬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TV에서 보고 또 봐서 완전히 머릿속에 새겨진 '4전5기 신화'가 탄생하는 바로 그 장면이다.

1977년 11월27일 낮 12시30분(한국시간) 파나마의 뉴파나마체육관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 타이틀전.

주니어페더급이 신설돼 초대 챔피언을 가리는 자리로 아시아에서 예선전을 거쳐 대표로 선발된 홍수환과 당시 11전 11 KO승을 기록하고 있던 파마나의 헥토르 카라스키야가 챔피언벨트를 놓고 맞붙었다.

'지옥에서 온 악마'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살인적인 돌주먹을 과시했던 카라스키야는 2회전에서 홍수환을 밀어붙여 4번이나 다운을 시켰다.

당시 경기를 생중계하던 아나운서조차 "역부족입니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카라스키야를 눕힌 뒤 바라보고 있는 홍수환(오른쪽).
카라스키야를 눕힌 뒤 바라보고 있는 홍수환(오른쪽).
그리고 시작된 3회. 링 중앙으로 나서는 홍수환은 바로 전회에 4번이나 엉덩방아를 찧은 선수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팔팔한 모습이었다.

홍수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가벼운 몸놀림을 보이며 카라스키야를 향해 원투 스트레이트를 내뻗었다.

카라스키야를 왼쪽 로프사이드로 몰아붙인 홍수환은 스트레이트로 상대를 묶어놓은 뒤 강력한 왼손 훅을 카라스키야의 오른쪽 몸통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휘청하는 카라스키야의 턱에 왼손 훅을 작렬시켜 통쾌한 대역전 KO승을 거뒀다.

사실 홍수환의 이 '4전5기' 역전승은 세계복싱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가히 '신화'라 할만하다.

그 이유는 '한 선수가 한 회에 3번 다운 당하면 KO패로 인정한다'는 복싱 규정이 있기 때문.

그런데 이날의 대결을 앞두고 룰 미팅 때 주먹에 자신이 있었던 카라스키야 측에서 프리 녹다운제를 제안하는 바람에 이 경기에만 무제한 다운제가 도입된 것.

홈링에서 홍수환을 완전히 때려눕히려고 프리 녹다운제를 제안했던 카라스키야는 오히려 오뚝이처럼 일어선 홍수환에게 된통 당한 꼴이 됐다.

홍수환의 이 '4전5기 신화'는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인구에 회자되며 전 국민이 시련을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됐다.

인기 강사로 활동 중인 홍수환.
인기 강사로 활동 중인 홍수환.
이 신화의 주인공인 홍수환 씨(60). 체육관을 운영하며 지도자로, 방송 해설가로 각종 강연회의 인기 강사로 활동 중인 그가 6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지원 민간단체협의회'에 참여했다.

그는 앞으로 각계 인사 40여명의 일원으로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데 적극적으로 지원 활동을 할 계획이다.

홍수환 씨와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 도전에는 한 가지 인연이 있다.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는 2011년 7월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결정된다.

그런데 이 더반이야말로 홍 씨가 1974년 7월 3일 남아공의 아놀드 테일러를 누르고 WBA 밴텀급 타이틀을 차지한 곳이기 때문이다.

평창은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 때 결선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캐나다 밴쿠버에 53대 56, 3표 차로 졌고,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할 때에는 러시아 소치에 결선 투표에서 4표 차로 아깝게 패했다.

33년 전 홍수환의 '4전5기 신화'에 이어 이번에는 평창이 '2전3기'의 역사를 쓰기를 바라며 새해를 기다린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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