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진짜 한국농구’를 정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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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0일 10시 57분


1980년대 한국농구 최고의 슈터로 활약한 이충희.
1980년대 한국농구 최고의 슈터로 활약한 이충희.
이충희(51)와 고(故) 김현준(1999년 39세에 작고).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로 꼽히는 두사람의 대결이 본격화 된 것은 농구대잔치 1983~1984 시즌부터였다.

훈련 때 100개의 3점슛을 던지면 90개 이상은 성공시켰다는 '슛 도사' 이충희와 농구대잔치에서 11년간 6063점을 기록한 '전자 슈터' 김현준.

고려대를 나온 이충희와 연세대 출신 김현준은 대학 무대에서도 종종 맞붙었지만, 이충희가 1981년 현대전자에 입단하고, 김현준은 삼성전자에 1983년 스카우트 되면서 8년 가까이 진검 승부를 벌였다.

이충희는 182㎝, 김현준은 183㎝으로 비교적 단신이었지만, 그야말로 '던졌다 하면 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두사람 모두 정확한 슈팅력을 보였다. 1992년 대만 프로리그에 진출한 이충희에게는 '슛의 신(神射)'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으니….

이충희는 장신이 마크를 해도 블로킹을 피해 뒤로 몸을 젖히며 던지는, 일종의 페이드 어웨이슛이 특기였고, 김현준은 안정된 자세로 던지는 빠르면서도 정확한 미사일슛이 트레이드 마크였다.

이충희 김현준의 맞대결 시대에 이어 허재 한기범 김유택이 기아의 전성시대를 이끌었고, 이상민 서장훈 현주엽 전희철 우지원 문경은 등 대학스타들이 '오빠부대'를 이끌던 시대를 거쳐 1997년 마침내 프로농구가 국내에도 탄생했다.
'전자 슈터'로 이름을 날렸던 김현준(앞).
'전자 슈터'로 이름을 날렸던 김현준(앞).

프로농구리그가 시작되면서 한국농구가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를 하는 전문가들이 있지만,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프로리그 출범부터 미국프로농구(NBA)를 철저하게 벤치마킹해 만든 탓에 흥행에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진짜 한국농구'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이충희와 김현준 같은 초특급 슛쟁이들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과연 이충희와 김현준이 현재의 프로리그에서도 그런 슈팅력을 발휘할 수 있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충희와 김현준의 경기 모습은 물론 프로농구 출범부터 이제까지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필자는 "전성기의 이충희와 김현준이 지금 프로리그에서 뛰더라도 득점왕은 둘 중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진짜 한국 농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최근 한국농구의 국제대회 성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11월 열린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한국 남자농구는 은메달을 차지했다. 개최국 중국과 접전 끝에 아쉽게 은메달에 머물렀다.

이 정도의 성적도 유재학이라는 현역 최고의 지도자가 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2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을 투입해 훈련을 착실히 쌓은 덕에 겨우 이룬 성과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과의 결승전을 들여다보면 장신의 중국 선수들에 높이에서 밀린 측면도 있지만, 보다 결정적인 것은 중국의 왕스펑, 쑨예, 주팡위 같은 슛쟁이들이 우리 팀에는 없었다는 점이다.

'겨울스포츠의 꽃'으로 자리 잡은 프로농구가 각 팀 간의 순위 경쟁으로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요즘의 한국 프로농구는 NBA의 축소판 같다는 것이다.

백발백중의 명중력을 지닌 슛쟁이들이 활약하는 '진짜 한국농구'를 보게 될 날은 언제나 올까.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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