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아시아 문화시장에 대한 코리아 인베이젼의 시대" ● "아시아 시장은 충분하게 잠재력이 있어 투자할 가치가 있다"
존 듀어든(39)을 모르는 한국 축구팬도 있을까?
영국 출신으로 런던 정경대(ESL)를 졸업한 듀어든은 아시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축구 칼럼니스트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한국 축구팬들 사이에는 "한국축구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이방인"이란 점 때문에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2002년 월드컵 직전 영국에서 잘 나가는 컨설팅 회사를 그만 두고 세계적인 온라인 축구 전문매거진은 '골닷컴'의 칼럼니스트로 전직한 그는 당시까지만 해도 소외받던 아시아 축구를 집중연구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특히 당시 모두가 권유하던 일본행을 뿌리치고 한국행을 고집한 것으로 한국 축구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제는 8년 이상 한국을 근거지 삼아 가디언 AP통신 ESPN 축구잡지 포포투 등에 고정기고하며 축구에 관한 한 권위 있는 저널리스트로 자리매김 했다.
그가 열혈 한국 독자들을 거느린 이유는 냉철하면서도 한국축구에 도움이 되는 글을 기고하기 때문이지만 유달리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뽐내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그의 축구칼럼에는 케이팝이나 한국 드라마에 대한 코멘트가 자주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리버풀이 우승 경쟁으로 뛰어든 모습은 왠지 '소녀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항상 유명했던 아이돌 밴드였던 것 같지만, 나는 최근에야 그들의 존재를 실감하고 있다. 이제 '소녀시대'의 모습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더 커다란 인기를 얻었던 원더걸스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2009년 3월)
"지난 주 프로그램에는 원더걸스가 소녀시대의 그늘에 가려진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월요일 우리는 한국 축구가 일본 축구보다 얼마나 앞서가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봤다. 그 두개의 현상은 모두 놀라울 정도였다."(2010년 5월)
"내 느낌에는 소녀시대가 한국 걸그룹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있다. 한국이 아시아 축구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처럼…."(2010년 5월)
최근 2010년 아시아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영국으로 떠나기 직전의 그를 광화문에서 만나, 그에게는 조금 색다른 주제일 수도 있는 한류에 대한 얘기를 나눠봤다.
■ 이제는 아시아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접하는 '한류'
- 당신의 칼럼에서 한국대중문화가 자주 언급돼 흥미롭다. 이른바 '한류'에 대해서 어떤 인상을 갖고 있나?
"한국에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대중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그는 한국에 와서 한국인과 결혼했음). 한국의 대중문화는 너무도 흥미로웠는데, 특히나 케이팝이 대표적이었다. 서구와 다르면서도 수준이 매우 높았다. 아시아 여러 나라를 자주 돌아다녔는데 어디를 가나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를 접할 수 있었던 점도 나를 흥분시켰다. 최근만 해도 도쿄를 갔을 때 카라가 '일본의 인기가요'에 출연했고 방콕의 축구장에서는 쉬는 시간에 거의 내가 알 만한 케이팝이 흘러나왔다. 이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고 한국을 위해서도 유익한 사건이다."
- 사실 한국인에게도 조금은 낯선 현상이다.
"나는 영국인이기 때문에 1960년대에 비틀스를 대표로 한 영국노래가 미국에 진출한 '브리티시 인베이젼'이 얼마나 대단한 사건인지 잘 알고 있다. 나는 지금이 바로 아시아에 대한 '코리아 인베이젼'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코리아 웨이브는 확실하게 실체가 있다."
- 어떤 점을 장점으로 꼽는가?
"무엇보다도 수준이 높다. 비주얼과 음악이 좋을 뿐 아니라 누가 보기에도 대단히 프로페셔널하고 잘 훈련돼 있다. 이런 대중문화상품은 사실 한국 경제의 상승과도 무관치 않다. 한국의 종합적인 실력이 높아지면서 대중문화 역시 영향력을 높여간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 축구도 산업이면서 대중문화의 중요한 일부
- 그러고 보면 한국축구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물론이다. 축구 역시도 중요한 산업이면서 대중문화의 일부이기도 하다. 한국대중문화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고 아이덴티티도 확고하다. 어느 나라를 무작정 베낀 것이 아니다. 단적으로 일본과 중국만 해도 코리아 스타일을 따라할 정도가 되지 않았나? 일정 정도 높은 품질에 도달한 것이다. 케이리그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마케팅으로 성공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어느 정도 품질 없이 세계적 성공은 불가능한 일이다. 케이팝을 EPL과 비교할 수 있는데 탄탄한 기초와 실력을 자랑하며 대단히 빠르게 세계로 확산됐다."
- 특히 '소녀시대' 팬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소녀시대도 좋아하지만 이효리도 좋아하고 원더걸스도 좋아한다. 9명의 소녀들이 나와서 노래하는 것이 처음에는 낯설고 기이했지만 곧 놀랍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차근차근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개성과 스타일을 알려나갔다. 완벽한 패키지였고 그들이 내뿜는 에너지에 압도당했다. '오!' '훗' '지' 같은 노래들은 대단히 훌륭한 완성도를 지닌 팝뮤직이라고 생각한다."
- 이제는 케이팝이 아시아 대중문화의 중심이 되면서 많은 소녀들이 한국에서 연예인으로 데뷔하고 싶어한다. 마치 EPL이 많은 외국축구스타들을 끌어들인 것과 비슷한데…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JYP의 '미쓰에이'가 2명의 중국인 멤버를 받아들인 것을 대단한 사건으로 본다. 사실 너무나 간단한 아이디어지만 실행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다. 자신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마도 케이팝의 다음 단계는 미국이나 유럽으로의 확산이 아닐까 싶다."
- 사실 이런 현상은 일본이 아시아 시장을 외면했던 탓이 크다. 너무나 아시아 시장이 작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시아 축구 시장은 EPL이 장악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데 사실 큰 비즈니스 기회는 없는 것 아닐까?
"아시아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EPL의 위세는 대단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첼시 아스날은 영국의 일개 축구팀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브랜드가 됐다. 물론 이들 팀들은 아시아에서 강한 마케팅 정책을 쓴 것이 사실이고 아시아 소비자들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실제 돈을 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재력이 대단히 큰 시장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어찌됐건 아시아에서는 누구라도 쉽게 EPL의 빠르고 아름다운 축구를 감상할 수가 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하지 못했던 일이다. 케이팝도 이와 비슷한 구도로 가는 것 같다. 누구라도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하고 빠르고 단순한 멜로디에 빠져든다."
■ "내 기억에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축구팀"
- 축구도 수출상품이라고 볼 수가 있을까?
"물론이다. 박지성은 대단히 훌륭한 문화상품이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군사 파워도 있겠지만 끊임없는 대중문화 수출이 밑바탕이 됐다. 그 누구라도 헐리우드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 내 생각에는 음악이 더 손쉽고 강력한 문화상품일 수 있다. 영화나 TV는 1시간 이상이 걸리지만 노래는 단 3분이면 소비자를 휘어잡을 수 있을 정도니까."
- 한국에 오기 전에 당신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던 중심 이미지는 무엇이었나?
"글쎄…고등학교 때는 한국 전쟁에 대해 공부하면서 인천과 부산이란 지명을 접한 기억이 난다. 1990년대에는 아무래도 축구였다. 1994년 1998년 월드컵을 시청하면서 한국을 아시아에서 강한 축구팀을 갖고 있는 나라로 인식하게 됐다."
- 한국을 축구란 이미지로 각인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웃음)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도 축구팀이 좋았지만 월드컵에서 한국만큼 강인한 이미지를 남긴 아시아 국가는 없었다. 내 기억에는 가장 강한 아시아 축구팀이었다. 이제는 영국에서 한국에 대한 보다 다양하고 강력한 이미지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2002년이 있었고 박지성이 활약하고 있고 게다가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삼성과 LG등 강력한 회사들도 존재한다."
■ "케이리그는 TV로 보지 마시고 경기장에서 관람을…"
- 케이팝의 아시아 인기는 잘 알려졌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어떨까?
"소녀시대가 유럽에서 영어로 노래를 부를 수 있지만…, 쉽게 성공을 예측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원더걸스도 미국에 진출해 힘겨운 시기를 견디며 일정정도 성과를 거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빨리 한국으로 돌아오는 편이 낳았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나?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영국의 수많은 뮤지션들도 미국으로 진출했지만 상당수가 실패했다는 점을 돌이키면 신기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 따지고 보면 비틀스나 아바 역시도 데뷔 초기에는 매우 어설픈 뮤지션이었다.
"물론이다. 아이돌 밴드의 라이프타임은 너무 짧지만 그들 가운데 한 두 팀은 위대한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성장해 갈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아직은 여전히 젊고 가능성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 앞서 축구역시 대중문화의 일종으로 주변에 전파된다고 언급했다. 케이리그의 미래는 어떻게 생각하나.
"많은 아시아 축구팬들이 케이리그를 존경한다. 그러나 막상 볼 기회는 없다. 사실은 TV 중계로 보기에 썩 좋은 모습은 아니다. 일단 관중석이 비어 있는 모습은 절대로 아름답지 않다. EPL이나 혹은 소녀시대 무대의 관중석을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케이리그는 아시아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케이리그는 TV를 통해서 지켜보는 것보다는 직접 현장에서 관람하는 게 훨씬 재미있는 리그다. 반드시 직접 경기장에 가서 지켜보기를 권한다. 케이팝만큼 흥미로운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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