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만원 vs 113만원
대한민국 서울, 소득격차 큰 두 가정 9개월 양육비 비교해보니
■ 이런 현실
2010년 3월 대한민국 서울. 두 아기가 태어났다. 남자 아이였고 생일도 비슷했다. 아기를 낳은 엄마들의 바람도 현명한 엄마가 되는 것. 주어진 여건에서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해주고 싶은 마음 또한 비슷했다.
공통점은 거기까지였다. 소득수준, 사는 곳 등 외적인 여건에서 차이가 난 두 가정은 엄마의 정보력과 아기가 누리는 문화적 기회에서 더 큰 격차가 벌어졌다. 한 아기는 장난감 하나 없이 빈 약통을 갖고 놀았고, 다른 아기는 다중지능 형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듣는다. 특별취재팀은 각자 다른 환경에서 9개월 된 아기를 키우는 두 엄마의 인터뷰를 육아일기와 육아가계부로 재구성했다.
○ 박송진(가명·30·서울 서초구) 씨
남편은 의사. 강남에 아파트가 있으며 아기를 낳기 전부터 일하는 아줌마를 두었다.
주위 엄마들이 해주는 것에 비하면 나는 평균이다.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서 2주간 있었다. 가격(350만 원)이 비쌌지만 그만한 대우를 받은 것 같다. 모유수유를 잘 도와주고 밥이 맛있다는 소문 그대로였다. 아기 옷장과 침대는 지인들이 선물해줬고 신생아 바운서(신생아용 간이침대·5만 원) 보행기(7만 원) 소서(영아용 놀이기구·18만 원) 등은 직접 구입했다. 아기 식탁의자(38만 원)는 유아용 수입 가구 업체에서 샀고 미국제 카시트(30만 원)는 백화점에서 마련했다.
스웨덴제 유모차는 199만 원에 구입했다. 엄마와 아기가 눈을 맞출 뿐 아니라 핸들링이 자유롭고 승차감이 좋다고 했다. 얼마 전 백화점에 들렀다 이 유모차의 방한용 액세서리를 봤다. 가격은 무려 69만 원. 합리적인 가격은 아닌 것 같아 그냥 지나쳤다.
몇 달 전 일반 분유를 먹였다 아이 몸에 두드러기가 난다는 걸 알았다. 고심 끝에 미국산(개당 3만2000원)으로 바꿨다. 1등급 한우의 육수를 내서 하루 세 번 이유식을 만들고 틈틈이 뇌 발달에 좋다는 핑거 푸드(손가락으로 먹는 음식)와 과일을 먹인다. 일제 기저귀(4팩에 7만 원)는 인터넷으로 싸게 구입한다.
동화책 낱권만 사주다가 최근 교재와 교구, 음악 CD가 포함된 교육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다중지능 형성에 좋다고 했다. 영아 과정에만 55만 원이 들어가지만 선생님이 방문수업을 해주니 비싼 건 아니다. 백일잔치는 가족을 초대해 저녁 식사로 했다. 대신 백일사진 앨범(90만 원)에는 신경을 좀 썼다. 화보 느낌이 나는 용지를 쓰니 20만 원이 더 들었다. 돌잔치는 유행이 자주 바뀌어 업체를 알아보진 않았고 강남의 호텔에 장소만 예약해뒀다.
○ 김오순(가명·40·서울 성북구) 씨
임대주택에서 살며 기초수급대상자로 월 110만 원을 받는다. 이혼한 ‘싱글맘’이다.
변변치 않은 형편. 아기를 낳기까지 돈 때문에 울진 않았다. 임신 중 매달 받는 초음파 검사는 ‘고운맘카드’(30만 원)로 해결했고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산후 조리비’(50만 원)는 퇴원비로 썼다. 구청에서 나오는 ‘출산 축하금’(20만 원)으로 이불과 포대기 등 육아용품을 준비했다.
아기에게 빈혈기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보건소 ‘영양플러스 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국산 고급 분유(1통 3만2000원)와 쌀 계란 감자 당근 등 이유식 재료를 받고 있다. 단, 빈혈기가 사라지면 지원이 끊긴다.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대신 받는 돈(월 10만 원)으로 기저귀와 나머지 분유 값을 해결한다. 여기까지 말하면 사람들은 ‘국가에서 다 해주니 애 공짜로 키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저 최소생계가 가능할 뿐이다.
점점 집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워진다. 얼마 전 버스에서 어떤 할머니가 나를 보곤 “요즘에도 (포대기를 하는) 이런 엄마가 있네?”라고 물었다.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요즘엔 멜빵으로 된 아기 띠를 사용한다고 했다. 친구가 아기 사진을 보자고 할 때도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만 있는 게 부끄러웠다. 가난해도 추억마저 가난한 건 싫어 백일이 한 달 지나 백일 사진을 찍었다. 100만 원이 넘는 상품 가운데 기본형(8만 원)을 택했다.
우리 집에는 아기를 위한 장난감과 책이 전혀 없다. 아기는 빈 약통을 갖고 논다. 부끄럽지 않다. 다만 누가 돈 들이지 않고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늘 도움 되는 정보는 엉뚱한 곳에서 얻었다. 저소득층 영양플러스 사업은 교회 전도사가 가르쳐줬다. 그나마 아기를 위한 유일한 사치는 아기 보험료(월 6만3000원). 20년 후 대학등록금을 쥐여주고 싶으니 부지런히 부어야 한다. ▼ 저소득층 영유아 지원 드림스타트를 아십니까 ▼
■ 이런 대안
요람부터 시작되는 육아환경의 간극, 메울 수는 없는 걸까.
특별취재팀은 김오순 씨의 아들 주원 군(가명)이 육아환경 개선을 위해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가능한 혜택들을 알아봤다. 그 결과 주원 군처럼 저소득층 가정의 영유아를 위해 드림스타트(Dream Start) 사업이 시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미국 헤드스타트(Head Start)와 영국 슈어스타트(Sure Start) 등을 본떠 도입한 드림스타트 사업은 어릴 적 교육 기회의 격차로 인해 이어지는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보건복지부의 국정핵심과제다. 2008년 본격적으로 시작해 현재 0∼12세 빈곤계층 아동과 가족을 대상으로 가정방문을 통한 ‘맞춤형 통합형 아동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드림스타트 사업본부는 자체 기준에 따라 주원 군을 ‘중위험 아동’으로 잠정 분류했다. 사업본부는 지원 대상을 △아동 개인 발달 △양육환경 △일반 위기 지표 등을 기준으로 △고위험 △중위험 △특정지표 중위기 △특정지표 고위기 등 4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이를 통해 주원 군은 영유아 건강검진 영양보충 등 필수 지원뿐만 아니라 홈페이지에서 원하는 장난감을 신청하면 한 달 동안 대여할 수 있으며 연령에 맞는 책도 빌릴 수 있다. 어머니 김 씨도 요리교실, 취미교실, 부모 모임 참여 등 부모정서지원 프로그램을 비롯해 △올바른 자녀 양육지식 기술 △영유아 응급처치 방문 교육 등을 받을 수 있다.
주원 군이 이 사업의 혜택을 지속적으로 받을 경우 전반적인 육아환경과 아이의 심리 상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사업본부가 2009년 조사한 사업효과성 및 만족도 실태 조사에 따르면 활동성 예민성 안정성 비협조성 등 요인으로 구성된 유아의 사회성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부모의 양육 스트레스도 줄어들었다. 양육 스트레스는 부모의 고통요인, 부모 자녀의 역기능적인 상호작용, 아동의 까다로운 기질 등 3가지로 구성된 PSI 양육스트레스 지수로 측정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혜택은 모든 저소득층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재 김 씨가 살고 있는 성북구를 포함해 전국에서 100여 개 드림스타트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김 씨는 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성북구 내에서도 저소득층이 밀집돼 있는 장위동에만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상자로 선정되더라도 지속적 관리를 받기 위한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 현재 구역 내에서 영유아 300여 명을 담당하는 직원은 평균 6명이다. 대상자가 0∼12세까지 광범위한 탓에 출발선의 격차를 줄이겠다는 사업 취지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헤드스타트는 임산부부터 만 5세까지의 유아와 가족, 영국 슈어스타트는 만 0∼4세 영유아로 시작해 현재 만 14세까지 대상을 확대했다. 사업 초기 단계인 드림스타트는 한정된 예산을 영유아에 집중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이처럼 보육부문에 대한 정부 지원은 해마다 늘고 있지만 혜택을 받는 당사자들이 체감하는 정도는 그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조7100억 원이었던 보육예산이 올해 2조1275억 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내년도 보육예산도 2조4700억 원으로 16.4% 더 증가했지만 막상 부모들이 부담해야 할 보육비(월평균 33만2000원)는 4년 전에 비해 24.3%나 늘어났다. 단순하게 소득수준을 기준으로 한 물적 지원이 아닌, 저소득층의 육아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포괄적 맞춤형 지원의 확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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