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건설 여자배구단 통역 이세윤(29) 씨가 얼짱 외모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그러나 이 씨의 외모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그녀의 직업, 즉 통역이 하는 일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드물다. 통역은 단순히 외국인 선수의 ‘입’이 아니다. 선수와 마음을 나누는 친구인 동시에 고민을 들어주는 멘토이기도 하다.
● 메신저 역할은 기본
가장 중요한 건 감독과 선수 사이에서 양 쪽 말을 정확하게 전달해주는 것이다. 통역의 감정이 들어가거나 단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예외는 있다. 감독이 선수를 꾸짖을 때 선수 기분이 상하지 않는 수준에서 완화해서 전달하는 요령도 필요하다.
배구 공부는 필수다. GS칼텍스 통역 이유현(21) 씨는 원래 배구에 문외한이었다. 통역 일을 시작하면서 배구용어가 적힌 노트를 늘 들고 다니며 익혔다. 나라마다 단어 쓰임새가 다른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 감독이 ‘스트레이트로’라고 주문하면 상대 직선공격을 블로킹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외국 선수는 ‘팔을 쭉 뻗어라’고 이해해 혼선이 생긴 적도 있다.
● 친구이자 멘토
통역은 시즌 중 개인시간이 없다. 경기 당일이나 훈련은 물론 쉴 때도 외국인 선수와 늘 함께 있다.
프로배구는 시즌 중 합숙이 원칙이다. 삼성화재 가빈처럼 숙소 근처 아파트에서 따로 사는 선수도 있지만 이 역시 잠자는 곳만 다를 뿐 똑 같이 단체생활을 한다. 통역도 꼼짝 없이 합숙이다. 이 씨는 “잠자는 시간만 빼놓고 늘 같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된다”고 말했다. 삼성화재 가빈 통역 남균탁(29) 씨는 집이 울산인데 시즌 중에는 3∼4개월에 한 번씩 간다.
이렇게 24시간 붙어 있다보니 자연스레 친해진다. 외국인 선수들은 고민이 있을 때 많은 부분을 통역에 의존하기도 한다. 남 씨는 “통역은 말 잘 하는 것보다 외국인 선수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GS칼텍스는 올 시즌 중반 외국인 선수를 페리에서 로시로 바꿨다. 통역 이 씨는 그 동안 정이 든 페리가 한국을 떠날 때 공항에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통역 일을 하기 위해 꼭 외국에 오래 살거나 유학한 경력이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이 씨는 부모가 어릴 적 필리핀으로 이민을 가서 외국에서 오래 살았다. 반대로 남씨는 한국에 살며 그 흔한 유학 한 번 가본 적 없지만 스포츠를 좋아해 구단 직원을 꿈꾸다가 통역이 된 케이스다.
통역은 구단 정직원은 아니다. 외국인 선수와 마찬가지로 보통 1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다. 이 씨는 “페리가 떠나고 구단이 다른 외국인 선수를 찾을 때 나도 그만둘 줄 알았다. 그런데 같은 영어권인 로시가 와서 계속 남아 있게 됐다”며 웃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