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젊은 지휘자를 기르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최근 ‘토종’ 음악가들이 세계 정상급 콩쿠르와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데 비해 지휘 분야의 젊은 인재는 많지 않다는 반성에서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올해 처음으로 지휘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에게 프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기회를 주는 ‘지휘자 꿈 나누기’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국내파 지휘자를 양성하겠다는 목적인 만큼 해외 유학 경력이 있는 사람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
선발된 10명 안팎의 학생들은 20∼23일 수원시 경기도문화의전당 행복한 대극장 무대에서 경기필을 직접 지휘한다. 이 무대는 일반에 공개한다. 예비 지휘자는 주어진 시간에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브람스 교향곡 1번,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중 일부 악장을 자신의 색깔로 표현해 낸다.
경기필은 ‘지도교수가 참관은 하되 연습하는 동안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연주가 끝난 뒤에 경기필 단원들이 서면으로 의견과 조언을 전달한다.
경기필의 이지원 기획전문위원은 “지휘자에게 악기는 오케스트라인데, 현재 국내 환경은 지휘자에게 연습할 수 있는 악기가 없는 형국”이라면서 “지휘자에게 악기를 쥐여주고 실제로 경험을 해보게 하자는 취지로 마련한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지난해 9월부터 현대음악을 선보이는 ‘아르스 노바’ 시리즈에 처음으로 보좌 지휘자(어시스턴트 컨덕터)제도를 도입했다.
첫 보좌 지휘자인 최수열 씨(33)는 아르스 노바 연주회 전 오케스트라를 연습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올해는 서울시향의 정기 시리즈인 ‘러시아 시리즈’(29일)에서 지휘자 겐나디 로즈데스트벤스키를 보좌하는 등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최 씨는 “서울시향을 통해 얻는 다양한 기회들이 무척 소중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스페인 지휘 콩쿠르에서 로즈데스트벤스키와 인사하려고 한참 기회를 엿봤고 지난해 1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작곡가 겸 지휘자 외트뵈시 페테르를 만나려고 몇 시간을 기다려 2분간 얘기를 나눴는데 이분들이 올해 서울시향 객원지휘자로 내한한다. 이들과 음악적으로 소통하는 것은 큰 공부가 된다”고 설명했다.
해외 음악 선진국들은 음대 지휘자 과정부터 프로 오케스트라를 경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학교 측이 인근 지역의 프로 오케스트라와 연계해 최소 한 학기에 한 차례오케스트라를 지휘할 기회를 제공한다.
독일 만하임에서 지휘 공부를 한 구자범 경기필 상임지휘자, 드레스덴에서 유학생활을 한 최수열 씨도 학창시절에 이미 프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해봤다. 하지만 국내 음대에서는 교내 오케스트라 외에는 경험을 쌓기가 어렵다.
최희준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겸 한양대 음대 교수는 “좋은 지휘자로 성장하기 위한 요건 중 하나로 프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해보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지휘는 크게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음악평론가 박제성 씨는 “좋은 지휘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체험이다. 국내 오케스트라들이 젊은 지휘자에게 문을 활짝 열 때가 됐다. 상임 지휘자의 리허설을 공개해 어떻게 단원들을 다루고 음악을 만들어나가는지 보고 듣고 경험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에서 좋은 지휘자가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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