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극예술의 심장부 뉴욕에서 이 같은 찬사를 받으며 활약하는 한국계 극작가 겸 연출가가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곧 미국으로 건너간 이영진 씨(38)다. 그가 최근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실험극장으로 유명한 PS 122에 올린 ‘제목 없는 페미니즘 쇼’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여자 무용수 여섯 명이 전라로 출연해 대사 없이 몸짓과 춤으로만 진행하는 이 파격적인 공연에 대해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언론이 앞다퉈 리뷰를 실었다. 여성의 정체성을 성(gender)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통념을 여성의 몸을 통해 깨부쉈다는 평이었다.
이 씨는 2006년 한국계 미국인을 등장시켜 미국사회의 인종차별을 풍자한 ‘용비어천가’로 주목받았고 2009년 흑인 배우만 기용해 흑백 차별을 풍자한 ‘선적’, 2010년 리어왕이 빠진 ‘리어’ 등을 발표하며 뉴욕에서 가장 촉망받는 극작가 중 한 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이 씨는 자신의 외조부가 역사학자이자 민속학자로 유명한, 6·25전쟁 중 납북된 손진태 전 서울대 교수라고 밝혔다. 어머니는 사진을 전공했고 2010년 작고한 아버지는 워싱턴주립대 화공과 교수를 지냈다. 이 씨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셰익스피어 연구로 박사과정을 밟다가 뉴욕 브루클린대로 가 극작을 전공했다.
“오랫동안 ‘내가 왜 셰익스피어를 공부할까’라는 질문을 품어왔는데 답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극작가가 되고 싶어서’였던 거죠. 그래서 맥 웰먼 아래서 실험극작을 배웠습니다. 연출은 여러 극장에서 인턴을 하며 곁눈질로 배웠습니다.”
그의 작품은 미국사회의 모순과 허위의식을 거침없이 까발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록 콘서트 형식의 ‘우리 모두는 죽을 거야’에선 리드싱어로서 직접 노래도 불렀다. 주로 한국적 정체성의 문제를 파고든 다른 재미작가들과 다른 면모다.
“저도 ‘용비어천가’에선 한국의 전통이나 문화적 충돌을 다뤘지만 곧 다른 주제로 넘어갔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싶습니다.”
셰익스피어 전공자가 실험극을 한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실험극에 대한 제 관심의 많은 부분은 오히려 오랫동안 셰익스피어를 전공했기에 가능했습니다. 현대인은 셰익스피어를 전통적 극작가로 생각하지만 당대의 그는 극예술의 형식을 경계까지 밀어붙인, 무모할 정도로 대담한 극작가였습니다.”
그의 차기작은 3막짜리 전통 연극 ‘진짜 백인(Straight White Men)’. 미국사회의 주류를 자처하는 백인 남성에 대한 풍자 코미디다.
그에게 뉴욕에서 극작가로 성공하기 위한 조언을 들려 달라고 했다.
“여러분이 존경하고 숭배하는 예술가들과 친구가 되라고 충고하겠습니다. 다른 예술가들과 단단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 예술가에겐 최고의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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