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지형]2013년 체제와 우주 날씨 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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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일 03시 00분


이지형 채널A 문화과학부 차장
이지형 채널A 문화과학부 차장
2012년 벽두에 2013년을 화두로 내건 이야기를 들으니 호기심이 발동한다. 하나는 그 시기를 2013년에 맞춘 ‘체제론’이고, 다른 하나는 2013년부터 일반인들에게도 본격 서비스하겠다는 우주 날씨 예보다. 미래 지향적인 얘기여서 두 경우 모두 신선한 첫인상인데, 들여다볼수록 그 느낌이 덜하다. 뭐랄까, 표면에 내세운 가치와 속내의 차이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해보는 중이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책도 내면서 ‘2013년 체제’를 얘기하고 있다. 민주화를 이뤄냈던 ‘1987년 체제’가 완결되지 못한 상태로 흐지부지되는 듯하니, 2013년을 시발(始發)로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보자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복지, 공정과 공평, 그리고 생태친화론 등이 새로운 체제의 요소라고 한다.

중요하고 정책적인 다른 요소들이 있을 테지만, 그래도 그 정도 가지고 ‘체제’, 게다가 ‘2013년’이란 해를 결부시킨 ‘체제’를 얘기하는 것은 무리 아니겠나 싶다. 예컨대, 백 교수가 오래전에 주창하고 이제는 많은 이가 공감하는 ‘분단 체제론’을 접했을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분단이란 게 체제의 외부환경일 뿐, 체제를 규정하는 내적인 요소라고는 생각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 ‘분단’을 체제 안으로 끌어들여 체제를 결정하는 중요 변수로 만들고 나면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다. 한반도에서 현실적으로 벌어지긴 하는데 설명은 어려웠던 난제들이 일거에 풀리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분단 체제론에 그러한 인식의 전환을 빚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013년 체제’는 그만큼 명쾌하지가 않다. 체제론으로는 접근이 쉽지 않다. 차라리 선거 캠페인이나 정치 마케팅 차원의 카피 정도로 보면 해독이 잘된다. 마케팅 하는 사람들이 자주 그러하듯, 2013년이란 해를, 흘러가는 여러 해 중의 하나가 아니라 한반도의 명운을 가를 뭔가 특별한 해로 ‘포지셔닝’ 하는 것은 명민한 마케팅에 속한다. 이런 마케팅은 총선과 대선에서 어느 한쪽을 결속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2013년 체제’가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그렇게 정치 마케팅 차원에서 접근할 때다. 2012년 양대 선거의 야당 승리가 2013년 체제의 전제요, 현 정부의 재집권은 2013년 체제의 장애라는 백 교수의 논리도 그래야 자연스러워진다. 체제론으로 접근하면 길을 잃는다.

표피와 속내의 불일치로 인한 혼란은 내년에 본격화한다는 우주 날씨 예보에도 적용된다. 내일 우주 평균 기온이 영하 270도라거나 일교차가 200도라는 얘기는 확실히 ‘날씨’에 가깝다. 그러나 그게 정기적으로 예보할 일인가 싶다.

정작 알리려는 것은 인공위성을 망가뜨리고, 북극 항로의 항공기들을 헷갈리게 할 수도 있는 태양발(發) 방사선의 변화인 듯한데, 이걸 굳이 날씨란 용어에 뭉뚱그릴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날씨’와 ‘예보’란 용어는 상황을 친근하게 해주지만, 그 대가는 모호함이다.

소위 체제론과 우주 날씨론을 한데 엮어 놓고 나니 기이한 느낌이다. 선거와 정치에 우주 방사선 얘기를 뒤섞었으니 무(無)정치적이란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정치만큼이나 피로한 게 정치 과잉이다. 2013년에 대한 ‘체제’ 규정을 포함해, 우리 사회가 정치 과잉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

이지형 채널A 문화과학부 차장 aporia@donga.com
#시발#미래지향적#백낙청#태양발#방사선#우주날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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