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수학 과학 교사 양성을 위해 1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미국의 경쟁력은 학생들의 수학 과학 실력에 달려 있고, 이를 위해서는 양질의 수업을 할 수 있는 교사의 수준이 관건이라고 본 것이다. 지난달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수학교육 선진화 방안의 핵심은 수학을 무미건조한 수식과 문제풀이 위주로 다루기보다는 일상생활과 연계해 가르침으로써 수학의 유용성을 인식시키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수학을 위한 수학’으로 고립되지 않고 수학이 예기치 못한 분야에까지 깊숙이 개입돼 있음을 보여주는 외연의 확장이 필요하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는 마방진이 등장한다. 마방진은 1부터 연속된 수를 정사각형 모양으로 배치하여 가로, 세로, 대각선의 합이 같아지게 만든 것이다. 태종으로부터 빈 찬합을 받은 세종은 첫 줄에 2, 9, 4, 둘째 줄에 7, 5, 3, 셋째 줄에 6, 1, 8을 배열하여 가로, 세로, 대각선의 합이 모두 15가 되는 3차 마방진을 만들어낸다. 마방진에서는 서로 다른 수가 어울려 여러 방향의 합이 같아지는 균형을 이루므로 모든 계층이 평등하게 행복하기를 갈구하는 세종의 바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드라마 ‘CSI’에서는 생물학 화학과 더불어 수학 지식이 유용하게 쓰인다.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범인의 희미한 영상에서 노이즈를 제거하고 선명하게 복원해낼 때 이용되는 것이 푸리에 해석과 웨이브렛 이론이다. 또 다른 미드 ‘넘버스(Numb3rs)’는 처음부터 고급 수학을 이용하는 드라마로 제작됐다. 미 연방수사국(FBI) 수사관인 형과 수학 교수인 동생이 주인공인데, 동생은 사건이 미궁에 빠질 때마다 등장해 해결사 역할을 한다. 여기서의 수학적 해법은 리만제타함수, P-NP 문제, 조합론, 조건부확률, 마르코프 연쇄, 베이즈 추론, 푸아송 분포 등 대부분 전문적인 수준으로 일반 시청자가 쉽사리 이해하기는 어려운 면이 없지 않다. 실제 이 드라마는 울프럼연구소의 수학 자문팀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고 검증도 거치고 있다.
최근 문제의 영화 ‘부러진 화살’은 수학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는 않지만 전직 수학 교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주인공이 법정에서 보여주는, 치밀한 논리로 무장된 항변은 그가 수학을 업으로 삼는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수학은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지만, 시각적 효과를 높이는 컴퓨터그래픽(CG)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거센 파도가 배를 덮치는 장면, ‘투모로우’의 대홍수 장면을 만들 때 이용되는 것이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이다. 이 미분방정식은 유체를 이루는 각 입자의 힘과 가속도를 수리적으로 계산하여 유체의 움직임을 표현한다.
캔버스에 물감을 뿌리는 드리핑 방식으로 유명한 화가 잭슨 폴록은 40대에 생을 마감했다. 그러다 보니 사후에 그의 유작이 빈번하게 등장했는데 진품인지 검증하는 방법으로 프랙털(fractal)이 이용된다. 수학의 한 주제인 프랙털은 부분이 전체와 동일한 모양과 구조를 가지면서 반복되는 패턴을 말한다. 예를 들어 고사리 잎이나 눈송이에서 프랙털을 찾아볼 수 있다. 오리건대 리처드 테일러 교수는 폴록의 작품들을 분석한 후 부분이 전체를 닮는 프랙털의 특징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논문을 네이처에 싣기도 했다.
이처럼 수학은 드라마와 영화, 미술 분야를 망라하여 다양하게 활용된다. 수학이 입시에서 중요한 필터 역할을 하는 교과, 그래서 마지못해 공부해야 하는 교과의 멍에를 벗고 학생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과목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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