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임용표]3만2000년 만에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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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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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표 충남대 원예학과 교수 한국유전체학회장
임용표 충남대 원예학과 교수 한국유전체학회장
러시아 연구진이 시베리아 영구 동토층 땅속에서 발견된 3만2000년 전 식물 열매로부터 꽃을 피우는 데 성공했다고 미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했다. 어떻게 3만 년의 장구한 시간 동안 식물체가 죽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을까. 일반적으로 종자의 수명은 짧게는 2주 정도, 길게는 4∼5년 정도밖에 갈 수 없는 것이 상식이다.

지극히 예외적으로 적절한 저장조건이 갖춰져 1300년 전의 연꽃 씨앗으로 꽃을 피운 사례가 있지만, 3만 년의 장구한 세월을 지난 식물이 재생되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발표를 대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생명체의 영구 보관이 가능한가하는 질문이다. 과학영화에서는 특수시설을 이용해 인체가 오랫동안 보관되었다가 깨어나는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그런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실제로 초저온냉동보관기술이 이를 가능하게 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식물의 경우는 연구가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실용화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경우 액체질소를 이용하여 정자를 보관하고 이를 재생시켜 인공수정에 이용하고 있지만 극히 초보적인 단계일 뿐이다. 생명체의 영구보존 문제는 아직은 숙제로 남아 있는 첨단과학 분야다.

우리 지구상에는 1000만 종 이상의 생명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 중 143만여 종이 생물종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그중 고등식물은 25만여 종인데 하루에 50∼100종이 멸종된다고 한다. 국내에도 자생식물 중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종이 300여 종에 이른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멸종식물을 되살려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라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생물다양성협약(CBD)의 일환으로 2010년 나고야 의정서가 채택되면서 자국의 유전자원 보존과 확보가 국가적으로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는 현실이다. 따라서 멸종위기식물을 포함한 생명자원의 영구보존과 재생문제가 국가의 중요한 정책으로 인식된다. 국제적으로도 주요 유전자원의 영구 보존을 위해 영구 동토층에 설립된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 일컫는 노르웨이 스발바르 국제 종자저장고(Svalbard Global Seed Vault)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될 것이다.

이번 연구의 중요한 의미는 종자에서의 발아가 불가능한 터라 과일의 태좌세포를 이용해 식물체를 재생했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에 식물생명공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조직배양기술’이 이용되었다. 식물은 동물과 다르게 하나의 세포에서 완전한 식물체를 재생할 수 있는 ‘분화전능’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조직이 손상되어도 그 부분을 재생할 수 있다. 동물은 이런 능력이 없기 때문에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조직을 분화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조직배양기술은 무병종서, 무병딸기묘 생산, 난의 대량생산 등 농업 분야에서 실용화된 첨단 기술이다. 최근 국가적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종자산업 분야에서도 유전자형질전환기법, 약배양법 등 다양한 조직배양기술은 유전자변형농산물(GMO) 개발을 포함한 신품종 육성을 위한 핵심 중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이 동물이나 인간에게도 가능해진다면 영화 ‘쥬라기공원’에서와 같이 공룡, 매머드 같은 멸종동물의 재생도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발표는 생물체가 가지는 생명유지본능과 생명의 고귀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자연의 신비스러운 현상을 보여주었으며, 첨단 생명공학기술이 현대인의 생활에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시킨 계기가 됐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면서 우리의 짧은 인생 속에서 우주와 자연의 심오함을 깨칠 수 있었다.

임용표 충남대 원예학과 교수 한국유전체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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