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현실에 좌절한 잉여세대의 싸움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4일 03시 00분


‘잉투기’

‘잉투기’의 젊은이들은 세상과 싸워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들은 자기들끼리의 싸움을 선택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KAFA필름 제공
‘잉투기’의 젊은이들은 세상과 싸워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들은 자기들끼리의 싸움을 선택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KAFA필름 제공
‘잉투기’(14일 개봉). 낯설고 독특한 영화 제목이다. 잉여들의 격투기라고 해야 할까, 영어의 진행형(ing) 의미를 담아 ‘우리는 아직 싸우는 중’으로 해석해야 할까. 아무튼 영화는 청춘들의 싸움 이야기다.

하릴없는 백수 태식(엄태구)은 인터넷 게임 아이템을 팔기 위해 낯선 남자를 만난다. 함정이었다. 낯선 남자는 인터넷 격투기 게임 커뮤니티의 라이벌 ‘젖존슨’의 하수인이었다. 태식은 이 남자와 함께 나타난 젖존슨에게 현피(온라인에서 싸우던 게이머들이 실제로 만나 싸우는 것)를 당한다. 얼굴은 만신창이가 되고, 맞는 동영상은 인터넷에 퍼져 또 한번 굴욕을 당한다. 태식은 복수를 위해 젖존슨의 행방을 찾는 한편 종합격투기를 익힌다.

영화에는 키보드 위에서만 ‘찌질거리는’ 청춘들이 가득하다. 이들의 ‘오프라인’은 참담하기만 하다. 격투기 도장 사범의 조카 영자(류혜영)도 마찬가지. 영자는 돈 많은 학부모가 건넨 봉투를 받고 수행평가 문제를 가르쳐주는 교사와 교실이 혐오스럽기만 하다. 그는 학교 성적과 싸우기보다 링 위에서 싸우기를 선택한 이종격투기 선수다.

‘존나’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태식의 주변 인물들도 그렇다. 여자친구도 없는 이들이 내뱉는 대사들에는 잉여세대의 절망감이 배어 있다. “성욕을 포기하고 싶어. 그래야 여자 생각이 안 나지. 우린 등신이야.”

이들은 세상을 포기하고 사이버 세상에서만 기생하지만, 가끔 희망의 고개를 내밀어 본 현실은 좌절과 분노만 돌려준다. 태식은 와신상담하며 어렵게 젖존슨을 찾아내지만 그는 복수를 받을 수조차 없는 상황. 영화는 복수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잉여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

2012년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엄태화 감독이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제작비를 지원받아 만든 독립영화다. 엄 감독과 주연배우인 동생 엄태구는 ‘제2의 류승완, 류승범 형제’로 불린다.

짧게 짧게 편집한 화면, 만화처럼 말 풍선을 이용한 재치 있는 대사 처리 등 감각적인 영상 기법이 눈길을 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보면 뒷맛이 씁쓸하다. 15세 이상.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잉투기#잉여#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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