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전도연-고수의 처절한 연기 관객 울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5일 03시 00분


‘집으로 가는 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서 전도연은 지인에게 속아 프랑스에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 된 30대 주부 송정연 역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서 전도연은 지인에게 속아 프랑스에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 된 30대 주부 송정연 역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방은진 감독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은 2005년 동아일보의 보도(2005년 11월 7일자 ‘법 모른 죄… 저 같은 사람 다신 없기를’)로 세상에 처음 알려진 ‘장미정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2004년 10월 30일, 30대 주부 장미정 씨는 가방을 운반하기만 하면 400만 원을 주겠다는 지인에게 속아 남미 가이아나에서 코카인을 운반하다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붙잡힌다. 마약 운반범으로 몰린 그는 말도 통하지 않는 현지 교도소에 수감돼 무작정 재판을 기다리다 756일 만에 한국 땅을 밟는다.

공권력의 무관심에 의해 소시민의 삶이 파괴되는 내용은 영화를 보는 내내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무자비하고 뻔뻔한 권력에 분개해서일 수도 있고, 지나치게 편향된 시선으로 권력을 그려 관객에게 화를 강요하는 삐딱한 연출 때문일 수도 있다. 설마 저랬을까 싶을 만큼 권력기관을 무능하게 표현한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집으로 가는 길’은 전자에 가깝다.

조금 격하게 표현하면 영화를 보는 내내 복장이 터진다.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은 주부 송정연(본명 장미정 대신 가명을 썼다·전도연 분)이 감금돼 있는 동안 세면도구를 갖다 준 것 외에 정말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재판에 결정적 자료가 될 서류를 사무실 캐비닛에서 썩히다 파지 처리했고, 현지 국선 변호사와 이야기할 수 있도록 통역사를 붙여달라는 요구를 묵살해 재판이 1년 이상 늦어졌다. 결정적으로, 이 사건을 해결한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석방 운동을 펼친 언론과 누리꾼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송정연과 남편 김종배(고수 분)는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를 반복한다. 돈 없고 백 없는 소시민인 이들은 철저히 무능력하고, 공권력은 무관심이라는 폭력으로 이들을 가볍게 짓밟는다.

화려한 영상미는 소시민의 무능력함을 더욱 배가시킨다. 파리에서 경찰차로 이송될 때 잠깐 등장하는 화려한 에펠탑과 프랑스 본토에서 7100km 떨어진 마르티니크 섬 교도소 앞에 눈부시게 빛나는 카리브 해는 바로 눈앞에 있지만, 송정연은 절대 누릴 수 없는 것들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놀랍다. ‘칸의 여왕’ 전도연은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연기하는 전도연’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역할을 소화했다. 무능한 40대 가장으로 보이려고 10kg 가까이 체중을 불린 고수가 눈을 희번덕이며 외교부 관계자에게 울부짖는 장면에서는 객석 여기저기서 낮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영화 내용과 배우들의 연기 모두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관객을 홀리는 것 같다. 11일 개봉, 15세 이상.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집으로 가는 길#장미정 사건#전도연#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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