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잠자던 고문헌, 뜻 풀어보니 퇴계 한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5일 03시 00분


고전번역원 한글번역 서비스, 7년만에 이용건수 1만건 돌파
의뢰인 오·탈자에 오역소동 빚기도

퇴계 이황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납매(蠟梅)’와 관련된 한시와 발문. 한국고전번역원 제공
퇴계 이황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납매(蠟梅)’와 관련된 한시와 발문. 한국고전번역원 제공
‘산 앞에 ‘납매(蠟梅)’가 있는 줄 이제야 알았으니/푸른 바위 곁에서 몇 년을 살았을까./시를 지어 보내주니 한 마음으로 감상해 기쁘지만/온종일 그리움이 떠나지 않는구려.’

마치 밀랍처럼 생긴 노란색 꽃잎의 매화나무 ‘납매’를 감상하고 지은 이 한시는 퇴계(退溪) 이황(1501∼1570)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누군가가 퇴계에게 보내준 납매에 대한 시를 읽고 깊은 감상에 빠졌다가 이를 다시 보고 싶은 그리움에 사무쳤다는 내용이다. 시 뒤에는 후기로 발문이 적혀 있는데 퇴계가 동생의 남산 집에서 납매를 우연히 발견하고 색과 향에 취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퇴계는 발문에서 “화보(花譜)를 보니 ‘납매는 원래 매화과에 속한 꽃이 아닌데 매화와 같은 시기에 피고 향기가 비슷하며 모양이 벌집과 매우 닮았기 때문에 납매라고 한다”고 썼다. 단순히 감상에만 그치지 않고 식물도감을 인용해 납매의 생태적 특성까지 밝히고 있다.

퇴계의 공식 문집에도 나와 있지 않은 이 시는 한국고전번역원(원장 이명학)의 한문번역 서비스를 통해 우연히 발견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A 씨가 “퇴계가 쓴 글 같은데 무슨 뜻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번역을 의뢰한 것. 노성두 고전번역원 연구원은 “필체로 보아 퇴계가 친필로 쓴 작품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전번역원에 따르면 최근 번역서비스 이용 건수가 7년 만에 1만 건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인 고전번역원은 한문 독해력이 취약한 국민들을 위해 집마다 전해 내려오는 족보나 한시, 편지 등에 대한 한글번역 서비스를 2008년부터 제공하고 있다. 갈수록 한자를 이해하는 고령인구가 줄면서 2011년까지 연평균 1000건이던 번역건수는 최근 1600건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무료로 제공하는 대국민 서비스인 데다 전담 인력이 두 명밖에 되지 않다 보니 업무 부담이 적지 않다. 밀려드는 번역 요청을 감당하기 위해 너무 긴 장문은 받지 않는다. 또 공공기관 특성상 필적 감정 같은 법적 분쟁에 휘말릴 여지가 있는 문건도 피하는 편이다.

특히 의뢰자가 오·탈자를 보내 번역에 애를 먹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조선 중종 때 문신인 지지당(知止堂) 송흠(1459∼1547)의 한시와 관련해 의뢰인이 e메일에 두 개의 오자를 넣는 바람에 완전히 다른 해석이 나갈 뻔하기도 했다. 노 연구원은 “국립중앙도서관 데이터베이스에서 지지당집(知止堂集) 원본을 확인해 겨우 오자를 바로잡았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퇴계 이황#한국고전번역원#한문번역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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