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거듭 강조한 ‘소통의 달인’
“선수들과 얘기 나누다 보면 눈치 보며 본심 드러내지 않아
지도자와 거리낌 없어야 발전”
히딩크의 지적 아직도 개선 안돼
“앞으로 ‘명보’라고 불러라.”
2001년 당시 축구대표팀 거스 히딩크 감독이 유럽 방문 경기를 하는 동안 팀 막내 이천수에게 한 지시다. ‘명령을 받든’ 이천수(34)는 식당에서 띠동갑인 주장 홍명보를 향해 ‘명보’라고 외쳤다. 어리둥절해하는 선수들을 향해 히딩크 감독의 지시가 이어졌다. “앞으로 운동장에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 긴박한 상황에서 형이라는 호칭을 붙일 시간이 없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다.”
“두리야 들어와… 두리 나가!”
2015년 호주 아시안컵에서 대표팀 골키퍼 김진현(28)이 최고참 차두리(35)에게 했던 말이다. 김진현은 “경기장 안에서는 선후배라기보다는 팀의 일원이기에 부담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후배들 역시 나한테 욕도 섞어가며 반말을 했다”며 웃었다.
“선수들과 얘기하다 보면 눈치를 보며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다. 지시를 해야 움직이지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동의를 하는지 내 얘기대로 따를 수 있는지 충분히 소통해야만 한다.”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이 4일 기자간담회에서 강조한 말이다. 그 역시 과거 히딩크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대표팀의 가장 큰 문제를 소통 부족에서 찾았다. 강산이 한 번 넘게 변했을 동안 한국 축구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일까.
14년 전 히딩크 감독의 ‘호칭 혁명’ 이후 대표팀의 경우 그라운드에서 후배가 선배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필요성과 장점을 공감했기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호주 아시안컵에서 한국이 27년 만에 결승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선수들 사이의 원활한 소통이 ‘원 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차두리는 고참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했고, 과거 “친한 해외파 선수들과만 따로 논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성용(26)은 선후배를 고루 챙기며 주장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적어도 현재 대표팀에서 선수들 간의 소통은 문제없어 보인다. 10년 넘도록 달라지지 않은 것은 지도자와 선수 사이의 소통이다. ‘작은 위계 문화’는 사라졌지만 ‘큰 위계 문화’는 그대로다. 축구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해 오면서 소속 팀 감독과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눴던 선수가 얼마나 될까. 자신의 생각을 말했을 때 진지하게 들어주는 감독은 또 얼마나 있었을까. “나대지 말라”고 혼나지나 않았으면 다행이다.
히딩크 감독과 슈틸리케 감독을 영입했던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슈틸리케 감독에 대해 “원하는 방향과 목표 설정이 명확하다. 그래서 소통이 잘되고 일이 잘 진행된다. 기술위원회와의 관계에도 협조적이다. 소통의 측면에서는 히딩크 감독보다 낫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의 말대로라면 슈틸리케 감독은 ‘소통의 달인’쯤 된다. 소통의 달인이 다시 한 번 한국 축구의 소통을 강조한 셈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한 지 5개월이 채 안 됐다. 계약대로라면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는 그가 대표팀을 지휘한다. 지나온 날보다 앞으로 보낼 시간이 8배나 많이 남았다. 남은 시간 동안 선수들은 확실하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감독은 귀를 열어 경청하면 선수들의 소통 능력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다. 이를 몸으로 익힌 선수들이 지도자가 되면 한국 축구는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할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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