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된 날…” 전설적 ‘가위손’이 목회자 된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5일 13시 47분


미용 전문가이기도 한 이호영 목사는 힐링마을 조성해 미용 및 암환우를 위한 시설 운영하고 있다. 사진 홍진환 기자
미용 전문가이기도 한 이호영 목사는 힐링마을 조성해 미용 및 암환우를 위한 시설 운영하고 있다. 사진 홍진환 기자
그는 전설적인 헤어디자이너, ‘가위손’이었다.

20대 중반의 그는 미용 기술을 가르쳐 준 ‘사부’ 홍 모 씨와 함께 서울 강남에 ‘이홍머리방’을 열었다. “그 시절 손님이 많아 갈퀴로 긁듯 돈을 벌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돈만 번 게 아니다. 연예인과 모델까지 등장하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자선 헤어 쇼를 주최하며 박준 헤어디자이너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면서도 고아원과 양로원을 찾아가는 휴일의 이발봉사도 빠뜨리지 않았다. ‘사랑의 이발사’, 당시 언론이 붙여준 그의 별명이다.

3일 경기 안성시 보개면 신장리 ‘참살이힐링마을’에서 그를 만났다. 1990년대 중반까지 전설의 가위손으로 활동했던 그는 목회자가 돼 있었다. 이호영 목사(55),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여기 오는 내내 궁금했다. 성공한 헤어디자이너가 왜 목회자가 됐을까.

“그러게 말이다. 하하. 이홍머리방의 이홍은 저랑 아홉 살 많은 홍 선생의 성을 딴 것이다. 독실한 신자였던 그 분은 틈만 나면 저보고 예수 믿으라고 했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 나중 봤더니 그 분은 목사님 사모님이 되셨더라. 그리고 전 목회자가 됐으니….”

-질문에 답은 아닌 것 같다.

“인생이 참 묘하다는 얘기다. 돌이켜보면 여러 계기가 있다. 1995년 1500여명 이상이 손님으로 참석하는 대규모 헤어 쇼를 준비했다. 그런데 2개월 전 형이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죽어 장례와 뒷일을 처리하느라 그 쇼를 불가피하게 취소했다. 그날이 바로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날이다. 결과적으로 그 행사 취소로 많은 사람이 살았다.”

-그 충격 때문인가.

“그 일 겪으며 인간이 알 수 없는 섭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곧바로 신앙을 만나지는 않았다. 당시 개인적으로 적지 않은 돈을 벌었지만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계속 있었다. 사업 문제로 머리가 복잡하던 1996년 1월 기도원을 처음 갔는데 뜻밖에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그게 뭔가.

“(기자가) 이해하기 쉽지 않겠지만…. 평소 드문드문 읽던 성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렇게 마음이 평온하고 기쁠 수가 없었다. 완전한 행복이었다. 한해 뒤 뒤늦게 신학교에 진학했다.”
2004년 기하성 교단(순복음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그의 2기 인생에서 참살이힐링마을을 빠뜨릴 수 없다. 2만6446㎡(8000평) 쯤 되는 공간이다. 신앙에 제대로 눈 뜰 무렵 사둔 야산이었다. 그는 신학 공부를 하면서 거의 외부 도움 없이 나무와 들꽃을 심고, 집을 손수 지으며 18년을 보냈다. 지금 그 야산은 섬김의 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교회와 요양원, 황토로 지은 펜션이 들어서 있는 힐링마을로 바뀌었다. 한쪽에는 산야초효소가든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는 식당도 있다. 대형 액자의 틀과 납골당에서 얻어온 등, 독서실에서 얻어온 의자 등 여기저기서 구해온 재료들이 건물 곳곳에 보인다.

-건축에 다양한 재료들이 사용됐다.

“돈이 없으니 어떻게 할 수 있나. 쓸만한 물건이다 싶으면 싸게 사거나 무료로 얻어왔다. 아파트 모델 하우스 해체할 때 재료를 많이 구한다. 하하”

-이제 이용은 안하나.

“아니다. 목회자가 된 뒤에도 한주 사흘은 가위와 빗을 챙겨 전국 각지로 미용선교를 떠난다. 한번 3, 4명이 함께 나가는데 평균 200~300명의 머리를 깎아준다.”

-미용 기술을 가르쳐 준 ‘제자’는 몇 명이나?

“교회 계신 분들이 선교를 이유로 미용 기술을 많이 배웠다. 어림잡아 2500명 정도다. 가르쳐줄 때 조건은 하나였다. 기술을 배우면 직업으로 하지 말라는 거다. 선교에만 힘쓰라는 의미다.”

-신자가 10여명 밖에 없다는 데 생활은 어떻게 꾸려가나.

“이용 봉사를 하면서 교회 얘기는 하지 않는다. 목사라니까 혹 물어보는 분께는 가까운 교회 가라고 한다. 돈 싸들고 예수님 만나봐야 혼밖에 더 나겠냐. 내 꿈은 이곳을 종교에 관계없이 가난한 사람들이 싸게 이용할 수 있는 힐링마을로 만드는 것이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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