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에 사는 정상조(가명·71) 씨는 2년 전 척추질환으로 입원한 아내를 돌보느라 집을 비웠다. 때마침 서울에서 일하던 아들이 휴가차 내려왔다. 고향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아들이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며 전화하더니 3시간이 지나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연락이 왔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뇌출혈’이 온 것이다. 아들은 처음엔 언어장애가 나타났다가 오른쪽 신체가 완전히 마비됐다. 하루 새 건강했던 아들이 졸지에 장애인이 된 것이다.
‘뇌출혈’은 정 씨 집안의 내력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환갑이 넘은 시기에 뇌출혈로 세상을 떴다. 어머니는 84세에 뇌출혈이 나타나 생을 마감했다. 아들마저 뇌출혈인 상황에서 자신도 이따금 두통이 심해지면 걱정에 사로잡힌다.
뇌혈관 질환은 가족력이 있는 경우 발병률이 2배 이상 높다. 특히 가족력이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흡연을 할 경우 발병 위험은 일반 사람보다 6배까지 높아진다. 정 씨의 아들은 평소 담배를 2갑 이상 피운 애연가였다. 다른 젊은이에 비해 뇌혈관 질환 위험이 훨씬 높았던 것이다.
정 씨는 동아일보 건강 리디자인팀의 문을 두드렸다. 몸이 아픈 아내와 뇌출혈로 쓰러진 아들을 돌보면서 ‘내가 건강해야 가족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이번 건강 컨설팅은 창원시 뇌출혈 환자 재활전문치료 병원인 희연병원 의료팀이 맡았다. 중증환자 2명을 돌보느라 건강을 챙길 여유가 없는 그에게 의료진은 ‘생활 맞춤형’ 처방을 내렸다.
○ 병 수발과 운동은 다르다
의료진이 정 씨를 진단한 결과, 운동량이 부족해 복부비만이 나타나는 다른 노인과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하반신 마비인 아내, 뇌출혈로 신체 기능이 마비된 아들을 돌보느라 몸을 많이 움직이는 편이다. 의료진의 조언에 따라 만보기를 사용한 결과 실내에서 간호하며 걷는 걸음만 1만1000보가 넘었다.
희연병원 재활의학과 운동치료팀은 “실내에서 걷는 것은 같은 걸음 수라도 운동효과가 떨어진다”며 “하루 30분이라도 외부에서 걷기 운동을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루 1만 보 중 최소 3000보 이상은 외부에서 걷는 것을 추천했다. 실외에서 걷기 운동을 하면 아무래도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를 줄여 혈액순환을 더욱 좋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씨처럼 집안에 중증환자 2명이 있는 경우 시간을 내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현재 아들은 병상에 누워 있고, 아내는 휠체어로 이동이 가능한 상태다. 의료진은 “집안을 리모델링해서 휠체어로 간단한 이동, 배변활동 등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병원 측은 4월경 정 씨의 집안 시설물을 고쳤다. 약 30분은 정 씨가 집을 잠시 비워도 되도록 변기, 싱크대 등에 보조시설물을 갖춘 것이다.
이 시설을 갖춘 뒤 정 씨의 아내는 안전대를 잡고 배변활동을 하거나, 간단한 집안일이 가능해졌다. 24시간 내내 환자 곁을 떠나지 못했던 것에서 벗어나 짧은 시간이라도 정 씨가 외부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 씨는 “집안 리모델링 덕분에 아내가 혼자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났다”며 “덕분에 잠깐 짬을 내서 산책을 할 수 있게 돼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 혈압에는 과일이 좋다? 수박은 하루 두 쪽만
홀로 간병인 생활을 하다 보니 정 씨는 영양을 고루 갖춘 식사를 하지 못할 때가 많다. 각종 건강보조식품과 과일을 섭취하는 것으로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정 씨는 “과일이 뇌혈관 질환에 좋다고 해서 많이 챙겨 먹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일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당분을 필요 이상으로 섭취하게 된다. 정 씨처럼 뇌출혈 가족력이 있는 경우, 1차적으로 당뇨병을 주의해야 한다. 단것을 섭취하는 것 자체가 당뇨병을 발생시키는 직접적인 요인은 아니다. 하지만 정 씨가 70대인 점을 감안하면 몸의 기능이 떨어져 혈당 조절에 문제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 씨가 당뇨병 환자는 아니더라도 당분 섭취는 당뇨환자 기준에 맞추는 게 좋다.
전현영 희연병원 영양사는 평범한 가정식을 한다는 가정하에 하루 섭취할 과일의 양을 교육했다. 바나나 1개, 토마토 2개, 배 2분의 1개, 수박 2쪽 중에서 선택하면 된다. 만일 주스를 통해 영양을 섭취하려면 하루 2잔 정도가 가장 적절한 양이다.
○ 술·담배는 줄이는 것이 아니라 끊는 것
정 씨 가족은 3대가 모두 ‘술고래’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음주량이 많았다. 정 씨의 아버지는 사망한 당일에도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면서 술을 마셨고, 결국 뇌출혈이 나타나 숨을 거뒀다. 뇌출혈로 쓰러진 정 씨의 아들 역시 하루에 소주 3병을 마실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 발병한 날에도 집에서 제육볶음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다가 쓰러졌다. 정 씨는 “나도 하루 2병 이상 술을 마신다”고 말했다.
가족을 간호하느라 따로 술 약속을 잡을 수 없는 정 씨는 최근 2년 동안 반주가 습관이 되어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소주를 한 병씩 비우는 것이다. 뇌혈관 질환은 혈관에 쌓인 지방 불순물들이 영향을 끼치는데, 술은 나쁜 지방이 쌓이는 것을 촉진한다. 의료진은 정 씨에게 “반주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씨는 3월부터 의료진의 제안에 따라 금연도 실천하고 있다. 평소 흡연량은 하루 한 갑. 최근엔 금단현상 때문에 매일 샌드형 과자 한 박스를 먹으며 군것질을 하는 게 습관이 됐다. 원래 단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습관적으로 섭취하는 것이다. 전현영 영양사는 “스틱형으로 만들 수 있는 채소를 간식으로 활용하라”고 말했다.
샐러리, 당근 등은 막대기 모양으로 손질이 쉬울 뿐 아니라 다른 채소에 비해 단단해 식품이 쉽게 손상되지 않는다. 정 씨는 “채소로 간식을 만들어 보니 생각보다 손질이 간단하고 군것질도 줄일 수 있어 쉽게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주치의 한마디]뇌압 오르면 위험… 넥타이-허리띠 졸라매지 마세요 ▼
환자 정모 씨(38)는 2년 전 뇌출혈 증세가 나타나 언어 장애와 오른쪽 신체 마비가 나타난 상태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독거하면서 정보기술(IT) 업종에서 야근을 반복하며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부모 모두 뇌출혈로 사망한 가족력이 있음에도 한 번에 소주를 3병씩 마시거나, 하루에 담배를 2갑 이상 피우는 등 생활습관이 좋지 못했다. 이런 생활들이 젊은 나이에 뇌출혈이 나타나는 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환자의 아버지인 정상조(가명·71) 씨는 아직까지 뇌출혈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가족력이 확실하게 드러난 상태이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가족 중 두 명이나 중증 상태로 거동이 불편하므로 특별한 예방법 대신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간단한 수칙을 제안했다.
정 씨는 우선 고혈압이 있기 때문에 이를 조절해야 한다. 고혈압 환자는 뇌혈관질환이 나타날 확률이 높다. 보통 혈압약을 복용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 씨는 예외다. 5년 전부터 발병한 전립샘염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 이 약이 혈압을 다소 떨어뜨리는 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뇌혈관질환이 발병할 위험이 높은 사람은 뇌압을 높일 만한 행동을 자제하는 게 좋다. 우선 숨을 참고 배에 힘을 과하게 주는 듯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 넥타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을 피하는 게 좋다. 극단적인 예지만, 쭈그리고 앉아서 머리를 감거나 구두끈을 매면서 오랫동안 머리 쪽으로 압력을 주는 듯한 자세도 위험하다.
요새는 날씨가 따뜻하고, 더위가 계속되겠지만 추운 계절이 다가오면 찬바람을 쐬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특히 한겨울보다는 갑작스럽게 추워지기 시작하는 늦가을에 방심하기 쉬운데 이때 외출할 경우엔 보온에 신경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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