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인천 연수구에서 뼈가 앙상한 11세 소녀가 한 겨울에 맨발로 집 배관을 타고 탈출해 편의점에서 빵과 과자를 훔쳐 먹다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넘겨졌다.
‘울산 계모 아동학대 사건’과 ‘칠곡 계모 아동폭행 사건’이 잊히기도 전에 발생한 이번 일로 국민들은 또 한번 충격에 빠졌다.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반복되어 일어나는 아동학대.
그 원인과 해결책을 짚어본다.
딸을 여덟 살 때부터 3년 넘게 집에 감금한 채 때리고 굶기기를 반복한 연수구 11세 소녀의 아버지 A씨와 그의 동거녀 B씨가 최근 구속 기소됐다. 이들이 아이에게 물리적으로 가한 폭력도 살인미수 수준이지만 평생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상처를 입혔다는 점에서 법정 최고형을 가해도 시원찮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법원은 아동을 학대해 숨지게 하거나 심각한 상해를 입힌 범죄자들에게 예전에 비해 형량을 높여 판결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집행유예나 가벼운 실형 판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0월, 시끄럽게 군다는 이유로 아홉 살짜리 딸에게 물고문을 하고 옷을 벗겨 내쫓기도 했던 여수의 40대 여성에게 징역 1년이 선고돼 논란이 일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자녀가 잘못을 깨닫게 하려면 때리지 마라
교육 전문가들은 “자녀의 체벌에 대해 ‘사랑의 매’라 칭하며 관대한 우리나라의 문화가 가정 내 아동 폭력 또는 학대를 정당화하거나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며 “부모가 아이의 잘못을 고치려고 때리는 행위는 아무리 경미하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학대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의 이나미 원장도 “훈육과 체벌의 경계는 없다. 아이를 때리는 행위처럼 부모의 부정적인 감정이 섞인 훈육은 그 자체로 학대”라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아동학대 실태는 언어 폭력과 방임 등까지 포함하면 위험수위”라고 분석했다.
다음은 이 원장과 주고받은 일문일답.
▼ 아이를 때리는 행위를 놓고 볼 때 훈육과 학대는 어떻게 다른가요.
때리는 행위는 훈육이 아니에요. 한번 손을 대기 시작하면 자기 절제가 되지 않아 강도가 점점 세져요. 다리를 때리다가 어깨와 얼굴로 손이 올라가고, 회초리로는 분이 안 풀리니까 골프채로 때리는 식으로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경우든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손찌검이나 매질을 해서는 안 돼요.
▼ 아동학대는 왜 하는 걸까요.
약자에게 군림하려는 건 인간의 어두운 본능 중 하나예요. 무의식 속에 그런 악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자기가 관리를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인간 본능의 파괴적인 성격이 강해지게 돼요. 그걸 억제하는 게 이성의 힘이죠. 문제는 우리나라의 많은 어른이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맞으며 자라 자식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돌려주며 가르치려는 습성이 있는 거예요. ‘이건 사랑의 매다, 나도 그렇게 맞으면서 컸다’고 하면서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죠. 하지만 이런 부모의 마음속에는 상처가 있기 마련이에요. 이를 치유하지 않고 어른이 돼서 자녀를 합리적으로 대하는 방법을 모르는 거예요. 자기 상처를 보지 못하고 모든 문제를 아이 탓으로 돌리는 거죠.
▼ 아이를 체벌하는 습관이 있는 부모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본인의 상처부터 치유하는 게 급선무예요.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상태로 아이를 계속 때리며 훈육하면 아이도 삐뚤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자꾸 어그러지고, 아이도 본인도 불행해져요. 아이들은 어른보다 회복력이 빠른 편이니, 자녀와의 관계가 틀어지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가 있으면 빨리 고치는 게 좋아요.
▼ 자녀의 잘못이나 나쁜 버릇을 바로잡기 위한 바람직한 훈육법이 있나요.
때리지 않고도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벌줄 수 있어요. 가장 효과적인 건 아이가 좋아하는 걸 못하게 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휴대전화를 일주일 동안 압수한다거나, 컴퓨터를 못 하게 한다거나, TV를 못 보게 한다거나, 외출을 금지한다거나, 화장실 청소를 매일 시키는 식으로요. 아동학대 수준이 아닌 이런 벌로 아이 스스로 잘못을 인식하게 해야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위해를 가하면 아이는 반성하기는커녕 부모만 미워하죠. 아이에게 좋아하는 것을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벌을 주려면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해요. 그래야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부모가 때리기만 하는 거예요.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그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어요.
부모는 아이를 벌주고 나서 “잘못했다”는 말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아이는 부모에게 혼나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겉으로만 반성한 척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나미 원장은 “아이는 마음 깊이 뉘우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한다. 그로 인해 부모는 더 강도 높은 벌을 생각하다 폭력도 서슴지 않게 된다”며 “아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부모가 왜 화가 났는지 이해할 때까지 충분히 설명하고 아이를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혹시 내가 아동학대 가해자가 아닐까
▼ 자가 진단 체크리스트 ▼
1. 자녀에게 원망적, 거부적, 적대적 또는 경멸적인 언어 폭력을 한 적이 있다.
2. 자녀의 인격이나 감정, 기분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행위를 한 적이 있다.
3. 자녀에게 위협을 주는 언어를 구사하거나 행동을 한 적이 있다.
4. 자녀에게 폭력적인 장면을 노출한 적이 있다.
5. 자, 회초리, 긴 막대 등의 도구로 자녀를 위협한 적이 있다.
6. 화장실, 창고 등 아무도 없는 빈 장소에 벌을 세우기 위해 자녀를 가둔 적이 있다.
7. 긴급 상황이 아닌 경우에도 자녀를 재촉하거나 공포 분위기 조성을 목적으로 고함을 지른 적이 있다.
8. 자녀의 신체 부위를 때린 적이 있다.
9. 자녀에게 신체적 손상은 입히지 않았지만, 고의적으로 신체를 가해하는 행위를 한 적이 있다.
10. 낮잠 시간이나 놀이 시간 등에 자녀를 혼자 있게 하거나 자녀 간 다툼을 방치한 적이 있다.
11. 자녀에 대한 기본적 보호와 양육을 소홀히 한 적이 있다.
12. 자녀를 위험 상황이나 비위생적인 환경에 방치한 적이 있다.
13. 자녀에게 필요한 의료 처치를 제공하지 않은 적이 있다.
14. 과도하게 신체 접촉을 하거나 자녀의 신체를 노출시킨 적이 있다.
15. 음란 비디오나 책을 자녀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위 체크리스트 가운데 한 가지 이상 체크한 항목이 있다면 당신도 아동학대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그 어떤 경우라도 이같은 행위를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제공〉
글 · 김지영 기자 | 사진 · REX | 디자인 · 김영화 | 도움말 · 이나미(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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