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원미경이 MBC 새 주말드라마 〈가화만사성〉을 통해 억척 아줌마로 돌아온다. 2002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 지 14년 만이다. 한겨울 진행된 첫 촬영에서 3시간 동안 맨발로 골목을 누비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 그녀는 여전히 예뻤다.
1980년대 이미숙, 정애리와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꼽히며 한 시대를 풍미한 원미경(56)이 14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한다. 컴백 작품은 MBC 주말극 〈엄마〉의 뒤를 이어 2월 27일 방송을 시작하는 〈가화만사성〉. 중식당 ‘가화만사성’의 절대군주 봉삼봉 일가의 이야기를 그린 가족드라마다. 오랜 숨 고르기를 마치고 시청자 앞에 다시 선 그녀는 남편 봉삼봉의 고집불통을 다 받아내며 가정을 꾸려온 안주인 배숙녀 역을 맡았다. 지난해 건강검진 겸 여행을 하려고 귀국했을 당시만 해도 많은 제작사의 출연 제의를 뿌리쳤던 그녀가 이 작품을 복귀작으로 선택한 이유가 뭘까.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이런 드라마는 처음이야’ 했어요. 무엇보다 따뜻한 고부 관계가 너무 좋았어요. 다른 드라마처럼 며느리와 갈등을 겪는 사이가 아니거든요. 이 드라마의 고부는 서로를 사랑하고 보듬어주는 애틋한 관계여서 무척 감동적이었죠. 대본을 보면 볼수록 기분이 좋아져서 복귀를 결심했어요.”
드라마 위해 가족 두고 홀로 한국행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녀는 1978년 춘천여고 재학 시절 미스롯데선발대회 진으로 뽑혀 연예계와 인연을 맺었고 그해 TBC 20기 공채 탤런트로 선발돼 연기에 입문했다. 그리고 바로 이듬해인 1979년에 김수현 작가의 원작을 영화화한 〈청춘의 덫〉으로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드라마 〈은실이〉 〈간난이〉 〈사랑의 진실〉 〈사랑과 야망〉, 영화 〈청춘의 덫〉 〈인간시장〉 〈화엄경〉 등 39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CF는 70편 넘게 찍었다.
하지만 2002년 드라마 〈고백〉을 끝으로 연예 활동을 중단하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 14년 동안 연기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 오랜 공백기를 가졌던 그녀에게 이번 ‘드라마 복귀’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런 그녀의 부담을 덜어준 이는 〈가화만사성〉 연출을 맡은 이동윤 감독이다.
“이동윤 감독이 배숙녀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한평생 아이를 돌보고, 가정을 보살핀 주부 역할’이라고요. 그 말에 용기를 얻었어요. 저도 미국에 살면서 딱 배숙녀처럼 아이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집에만 있었거든요. 배역을 위해 특별한 준비를 하기보다는 그냥 평소 하던 대로 연기하면 되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부담이 별로 없어요. 다른 드라마였다면 적응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녀의 남편은 1984년 MBC 드라마국 프로듀서로 입사해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 〈눈사람〉 〈신데렐라〉 〈애인〉 등 다수의 히트작을 연출한 이창순 PD다. 두 사람은 1987년 결혼할 당시 톱 배우와 스타 PD 부부의 탄생으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14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 목회자의 길을 선택한 이 PD는 현재 버지니아 주에서 목사로 활동하고 있다. 두 사람은 슬하에 두 딸과 아들 하나를 뒀다. 원미경은 〈가화만사성〉 촬영을 위해 남편과 아이들을 미국에 두고 홀로 귀국했다. 어느덧 장성한 세 아이와 남편은 그녀의 드라마 복귀를 반겼을까.
“가족들은 제가 다시 연기를 하겠다고 하니까 굉장히 기뻐했어요. 특히 아이들이 ‘그동안 우릴 돌보느라고 고생했으니 이제 날개를 다세요’라고 말해줘 든든했어요. ‘엄마가 연기를 다시 했으면 좋겠다’면서 열심히 응원해줬죠. 요즘도 아이들이 매일 두 번씩 응원가를 불러주고 있어서 힘이 나요.”
1월 29일, 인천의 재래시장에서 〈가화만사성〉 첫 촬영이 진행됐다. 이날 원미경은 영하 1도의 혹한에도 3시간 동안 맨발로 시장 골목을 달렸다. 그러는 와중에 여덟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는 등 연기 투혼을 불태워 그녀를 지켜보던 스태프들의 감탄을 자아냈다고 한다.
▼ 첫 촬영이 힘들진 않았나요. 몸이 힘들진 않았어요. 거의 40년 가까이 연기를 했는데도 막상 다시 하려니 촬영 현장이 너무 생소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촬영을 하는 건지, 구경을 하는 건지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첫 촬영을 했어요. 촬영이 끝나고 난 후에 이동윤 감독에게 “어머, 어떡해요. 어쩔 줄 몰라 정신없이 찍었네요”라고 말했더니 “그건 어쩔 줄 몰라 하는 신이니 괜찮다”며 웃더라고요.
▼ 선배 연기자인 김영철 씨와는 이번 작품으로 드라마 〈들국화〉 이후 23년 만에 재회했다고 들었어요. 두 사람이 극 중 부부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손발이 잘 맞나요. 오랜만에 뵈니까 내심 너무 어색했어요. 그런데 처음 대본 연습을 하는 날, 연습실에 들어갔더니 김영철 선배가 옆에 와서 저를 꽉 안아줬어요. 그러면서 “네가 다시 돌아와서 정말 기쁘다”고 말해주는데 마음이 찡하더니 눈물이 나더군요. 정말 감사했고, 그 힘으로 둘이 함께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요.
▼ SBS에서 같은 시간대 방송하는 김수현 작가의 가족드라마와 맞대결하게 됐는데, 기분이 어떤 가요. 김수현 선생님, 제가 참 좋아하는 분이에요. 작품도 훌륭하고, 저도 기회가 되면 다음에 선생님 작품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이렇게 경쟁작으로 만났네요. 사실 처음에는 선생님 작품과 맞붙는 게 부담이 많이 됐는데 한편으로는 재밌을 것 같아요. 이 싸움이 기대돼요. 사람이니까 이기고도 싶고(웃음).
▼ 〈사랑과 진실〉 〈아줌마〉 등 그동안 출연하는 작품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가화만사성〉의 시청률을 어느 정도로 예상하나요. 시청률을 언급하기는 조심스러워요. 마음 한구석에는 잘됐으면 하는 욕심이 자리하고 있을지 몰라도, 지금은 제가 실수 안 하고 엉뚱한 짓 안 하고 감독님과 작가님이 의도하는 대로 연기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희 팀의 모든 연기자들이 한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지금처럼 끝까지 웃으면서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앞으로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요. 사실 이제 저도 적은 나이가 아니고 외모도 그만큼 나이 들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세월이 안긴 주름을 감추고 싶진 않아요. 물론 주름이 그대로 드러나는 게 좋을 여배우는 없겠지만 이제는 감추려야 감출 수도 없으니 자연스럽게 주름이 보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랜만에 저를 보는 분들이 “어, 나만 늙은 게 아니네. 원미경도 같이 늙어가네” 그랬으면 좋겠어요. 나이 먹고 주름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만큼 그런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물 흐르듯 살고 싶어요.
글 · 김지영 기자 | 사진 ·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스토리 플랜트 제공 | 디자인 ·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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