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노의 저주 깬 남자, 염소의 저주도 풀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4일 03시 00분


시카고 컵스, 다저스 꺾고 71년만에 월드시리즈 진출

 23일 시카고 컵스가 LA 다저스를 5-0으로 꺾고 71년 만에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한 순간 TV 카메라는 한 남자의 얼굴을 비췄다. 테오 엡스타인 컵스 사장(43)이었다. 이유는 그야말로 ‘염소의 저주’를 깨기 위해 컵스로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컵스는 미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우승하지 못한 팀이다. 1908년이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이었으니 지난해까지 107년 동안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이를 ‘염소의 저주’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1945년 시카고의 안방구장 리글리 필드에서 열린 컵스와 디트로이트의 월드시리즈 4차전. 빌리 시아니스라는 이름의 컵스 팬이 ‘머피’라는 이름의 애완용 염소를 구장에 데려왔다. 주변 사람들은 “냄새가 난다”며 불평했고, 시아니스는 머피와 함께 야구장에서 쫓겨났다. 이때 시아니스는 구장을 떠나면서 “망할 컵스, 다시는 이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사람들은 이 말을 컵스가 두 번 다시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3차전까지 2승 1패로 앞서던 컵스는 4차전에서 1-4로 졌고, 결국 그해 월드시리즈에서 3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그리고 이후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다.

 컵스 구단과 팬들은 ‘염소의 저주’를 풀기 위해 별짓을 다 했다. 구단은 1984년과 1989년 개막전에 빌리 시아니스의 조카인 샘 시아니스에게 염소를 끌고 오게 했다. 작년에는 몇몇 시카고 식당 주인이 친구들과 수십 kg의 염소 고기를 단시간에 먹어치우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가장 기대를 모았던 것은 엡스타인 사장의 영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주 깨기에 관한 한 그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미국 예일대를 졸업하고 볼티모어와 샌디에이고에서 직원으로 일했던 엡스타인 사장은 20대이던 2002년 말 보스턴 단장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2004년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보스턴의 우승을 이끌었다. ‘밤비노의 저주’는 보스턴이 1920년 베이브 루스를 라이벌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한 뒤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한 것을 일컫는 말이다. 1918년 마지막 우승을 차지한 보스턴은 86년 만인 2004년에야 ‘밤비노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3년 뒤인 2007년에 또 한 번 우승을 차지했다.

 컵스는 2011년 말 엡스타인을 사장으로 데려왔다. 컵스는 2012년부터 3년간 여전히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최하위에 머물며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동안 트레이드 등을 통해 데려온 투수 제이크 아리에타와 카일 헨드릭스, 포수 미겔 몬테로, 1루수 앤서니 리조 등이 모두 팀 주력으로 우뚝 섰다. 여기에 지난해 ‘명장’ 조 매던 감독을 데려와 선수단 지휘를 맡겼다. 올해 트레이드 마감 시한 직전에는 특급 마무리 아롤디스 차프만을 뉴욕 양키스에서 영입했다. 컵스는 지난해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하며 희망을 밝히더니 올해는 1945년 이후 71년 만에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올해 팀이 승승장구하자 컵스 구단은 9월 엡스타인 사장과 5년간 5000만 달러(약 571억 원·추정)에 연장 계약을 했다.

 컵스는 26일부터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클리블랜드와 월드시리즈에 돌입한다. 공교롭게도 클리블랜드 선수단의 수장은 테리 프랑코나 감독(57)이다. 프랑코나 감독은 2004년과 2007년 보스턴의 월드시리즈 우승 당시 감독이었다. 엡스타인 사장과 프랑코나 감독은 함께 ‘밤비노의 저주’를 풀었던 동지에서 적으로 만나게 됐다.

 클리블랜드 역시 1951년 팀 마스코트인 와후 추장의 색깔을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교체하고 표정도 우스꽝스럽게 바꾸면서 우승과 거리가 멀어진 ‘와후 추장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다. 클리블랜드의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은 1948년이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시카고 컵스#다저스#월드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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