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재희]지하철사고에 강력한 징벌제 도입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4일 03시 00분


정재희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정재희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지하철에 ‘불안’이라는 객차가 붙어 다닌다. 22일 분당선 왕십리행 열차가 갑자기 멈춰 승객들이 한 시간 넘게 갇혀 있다가 철도로 대피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났다. 며칠 전에는 서울지하철 김포공항역에서 젊은 시민의 생명을 앗아간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구의역에서 열아홉 살 젊은이가 숨진 뒤 6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이다.

 분당선 고장 열차 기관사는 철도노조 파업으로 투입된 대체 인력이라고 하지만 안전 경영의 실패로 판단된다. 지하철공사의 경영층은 시민의 안전 보장을 위하여 명확한 안전경영 방침 설정과 안전시설 확보, 시설에 대한 정밀 위험성 평가 등을 통한 사고 요인 제거, 기관사 등에 대한 안전운행 및 비상대응 능력 제고를 위한 교육 등 의무가 있음에도 계속 사고를 내고 있다.

 스크린도어가 무고한 시민의 생명을 앗아가는 ‘살인문’이 된 지는 오래됐다. 서울시가 국회에 제출한 ‘스크린도어 고장 장애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14년에만 서울메트로가 관리하는 지하철에서 스크린도어 고장 장애가 하루 평균 33건이었고, 서울도시철도공사가 관리하는 지하철에서는 하루 평균 7.3건이었다. 서울시민의 교통수단인 지하철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다중 위험시설로 전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스크린도어가 관련법상 안전시설물이 아닌 단순한 ‘구조물’로 취급되고 있다. 모든 광역 및 도시철도 승강장에 스크린도어 설치가 의무화되었음에도 정작 안전기준이 없다.

 둘째, 스크린도어는 전기 및 전자회로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어 지하철 운행용 고전압이나 열차 운행 시 발생하는 노이즈 등 다양한 외부 환경에 의한 출입문 오동작 우려가 있다. 이로 인한 안전사고 발생을 막기 위해 해외 대부분의 국가는 국제 안전규격인 안전무결성 수준(Safety Integrity Level·SIL) 인증을 받는데 국내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셋째, 비용 절감을 위해 기관사 한 사람이 열차를 운행하는 관행이다. 기관사 한 명은 김포공항역 사고와 같이 인터폰으로 출입문에 승객이 끼었다는 중대한 위험 신고가 접수된 비상사태 시에도 위험 요인 확인과 안전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지하철을 시민의 안전한 발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안전요원을 포함한 승무원 2인 탑승과 기관장의 안전경영 책무 강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또 스크린도어를 관련법상 안전시설물로 정리하고, 국제 수준에 맞는 안전기준을 정해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아울러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문제처럼 수많은 사상자를 내는 안전사고가 지금도 반복되고 있지만, 책임지지 않는 문화는 여전하다.

 안전 선진국인 영국에서는 2007년 강력한 징벌 제도를 도입했다. 이 나라가 시행하는 ‘법인과실 치사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은 벌금의 하한은 있어도 상한은 없다. 2008년 지질환경 측정 회사에서 근로자가 사망한 사고가 발생하자 영국 정부는 이 법에 따라 38만 파운드(약 5억2800만 원)가 넘는 벌금을 부과했다. 이 회사 연매출의 250%에 달하는 규모였다. 영국은 이 법을 제정하고 나서 대형 사고 감소에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 사회도 국민의 안전한 삶을 위하여 적정한 안전비용의 지출과 안전경영 실패에 따른 책임을 묻는 징벌제 도입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하철 같은 곳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엄정한 법 집행을 시행하는 사회로 바꾸어 나가길 기대한다.
 
정재희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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