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이홍렬 “입이 살아있는 그날까지, 나눔의 보람 전파”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10월 25일 06시 57분


개그맨 이홍렬은 방송 활동을 모두 접었을 당시를 떠올리며 “아마도 우울증 비슷한 것이 왔을지 모른다”고 돌이켰다. 이제는 타인과 더불어 살며 제2의 인생을 펼쳐가고 있다. 사진은 2012년 서울∼부산 국토종단 후 성금으로 자전거를 구입해 남수단 주민들에게 선물한 모습. 국토종단을 마치 뒤 환호하는 이홍렬. 지난해 ‘락락페스티벌’에 참여한 장미여관(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제공|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개그맨 이홍렬은 방송 활동을 모두 접었을 당시를 떠올리며 “아마도 우울증 비슷한 것이 왔을지 모른다”고 돌이켰다. 이제는 타인과 더불어 살며 제2의 인생을 펼쳐가고 있다. 사진은 2012년 서울∼부산 국토종단 후 성금으로 자전거를 구입해 남수단 주민들에게 선물한 모습. 국토종단을 마치 뒤 환호하는 이홍렬. 지난해 ‘락락페스티벌’에 참여한 장미여관(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제공|초록우산 어린이재단
■8.<끝> ‘배려의 아이콘’ 이 홍 렬

1986년 ‘초록우산’ 제안에 첫 행사
“출연료 받고나니 죄책감이 들더라”
재단과 인연으로 30년 어린이 후원

국토종단 성금으로 에티오피아 돕고
2005년부터 나눔콘서트·기부 강의도


1980년대 이후 꾸준히 활약해온 개그맨 이홍렬(62)은 콩트 연기와 센스 넘치는 입담으로 대중에게 웃음을 안겼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푸근하고 따스한 미소를 짓게 한다. 대신 조용히 방송가를 떠나 전국 방방곡곡 그리고 전 세계에서 소리 소문 없이 남을 배려하는 삶을 30여년 동안 실천하고 있다. 이홍렬에게 배려는 “남는 장사”다. “마음이 뻐근해지는” 감동의 수확으로 마음은 부자가 된다. 그 기쁨은 “처음이 어렵지, 시작하면 멈추기가 어렵다”며 자신 있게 말한다.

● “운명처럼 다가온 배려의 기쁨”

이홍렬은 1986년 아동복지 전문기관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제의를 받고 한 행사의 진행을 맡았다. 그리고 출연료 1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받았다. 집으로 돌아와 “죄책감”에 시달렸다. 좋은 일을 하러 갔는데, 대가를 받은 것 같아 마음이 괴로웠다.

재단을 통해 보답하기로 결정했다. 각각 강원도와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어린이와 결연을 맺어 후원했다. 인연을 계기로 1998년부터 지금까지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이홍렬은 “(후원을)하고 싶어서 시작한 게 아니었는데 30년 이상 이어왔다”고 돌이키며 “시작이 어렵다고 하는데, 시작하면 멈추는 게 더 어렵다”며 웃었다.

“남을 배려하는 삶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상대의 상황을 헤아리는 것 아닌가. 나보다 조금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가며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 진정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가짐에서 그치는 사람들이 많다. 방법이 어려워 미루다 시기를 놓치는 이들이 대다수다. 이런 면에서 나는 운이 정말 좋았다. 당시 그러한 기회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렇게 이홍렬은 배려의 삶에 “발을 걸쳐놓게” 됐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후원 어린이를 늘려갔다”는 그는 매달 적지 않은 액수의 후원금 인출 문자메시지가 도착하면 “‘오늘도 제 때에 맞춰 나갔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이홍렬은 “저 뿐만 아니라 모두가 먹고 살기 바쁘지만 후원을 통해서라도 나눔을 함께 하면 좋지 않나”라며 “죽을 때까지 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길 바란다. 나의 후원이 끝나면 누군가는 또 다른 도움의 손길을 마냥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 “에티오피아, 121쌍 그리고 536명”

2012년 이홍렬은 모든 방송 활동을 접고 부산으로 향했다. 한 청년의 국토종단에 관한 기사를 접하고 “가슴의 뜨거움”을 느껴 걷기로 결정했다.

이왕 하는 것,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대사의 역할을 최대한 활용해 ‘이홍렬과 함께 마음으로 걷기’를 기획했다. 서울까지 610km를 완주했다.

소식을 접하고 후원의 손길을 보내준 성금만 무려 3억원. 후원금을 자전거 2600대 구입에 활용해 아프리카의 최대 빈민 지역인 남수단에 전달했다. “내 인생에 아프리카란 나라가 있으리라” 상상도 못했던 그가 지금은 에티오피아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시작은 한국전쟁 당시 에티오피아 정부가 6000명이 넘는 병력을 파병했다는 이야기를 접하고부터다.

“에티오피아를 방문하고 너무 놀라웠다. 지금도 이렇게 힘들게 생활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파병을 했을지. 우리나라를 생각해준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어 개인적으로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이홍렬은 536명의 결연 후원자를 찾고, 121쌍의 결혼식 주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전쟁 당시 에티오피아 파병 인원 중 부상병 536명, 희생자 121명을 기리겠다는 의미다.

“주례를 하면 보답으로 양복을 주는데, 나는 후원을 제의한다”며 “술자리에서 10분만 ‘뻐꾸기’ 날리면 언젠가는 후원자들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 “입이 살아있는 한 계속되는 배려의 삶”

이홍렬의 인생에서 ‘뿅망치’와 ‘할머니 가발’은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대 전성기 시절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좋은 날-귀곡산장’ 속 할머니 역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홍렬쇼’에서는 ‘참참참’이란 코너로 인기를 끌었다.

이홍렬은 “가수는 히트곡을 남기지만 나에게는 그게 전부다”며 “대신 대중에 웃음을 주고 사랑과 인지도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2005년부터 나눔 콘서트 ‘이홍렬의 락락(樂樂) 페스티벌’, 2007년부터는 기부 강의 프로그램 ‘이홍렬의 펀펀 도네이션’을 펼치고 있다. 특히 강의는 이홍렬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100회를 채우는 것이 목표였다. 10년을 걸쳐 최근 101회를 성공리에 마쳤다.

“방송가를 떠나 있지만 마이크를 드는 것이 나의 직업이다. 음악과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전하면서 보이지 않는 돈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는 “지루한 내용이 많지만 강의 참석자 중 졸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며 으쓱했다.

현재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에 출연 중인 이홍렬은 11월23일 전남 나주에서 열리는 12회 ‘락락페스티벌’ 준비로 한창이다. 기획부터 출연자 섭외까지 그의 몫이다. 그동안 조항조, 추가열, 신효범, 혜은이, 장미여관, 옹알스 등이 나눔이라는 의미에 동참해왔다.

이홍렬은 “많은 가수들이 나의 달콤한 협박과 꼬임에 넘어갔다. 하하! 출연료는 한 푼도 없다. 기념품과 기념패가 전부다”며 “하지만 모두가 잠시라도 나눔을 통해 배려하는 기쁨에 선뜻 응한다”고 말했다.

“평생 입으로 살아왔다. 입이 살아있는 그날까지 나눔의 의미와 보람을 알리고 싶다. 경험자가 말해야 설득력 있지 않나.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시작한 행동이 결국에는 나의 행복으로 돌아온다.”

백솔미 기자 b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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