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말싸움일 경우 싸움으로 안 번져 1990년 삼성-OB 폭력사태로 2명 입건 농구는 벤치인원 싸움 가담해 실격퇴장
9월 26일(한국시간) 메이저리그 피츠버그-워싱턴전. 강정호(피츠버그)의 3회 타석 때 상대 투수 A. J. 콜의 초구가 타자의 머리 쪽을 향해 날아들었다. 구심은 즉각 투수를 퇴장시켰다. 빈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양 팀 덕아웃에 있던 선수들 사이에 언쟁이 일어나더니 급기야 벤치는 물론 불펜에 있던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까지 뛰쳐나왔다. 벤치 클리어링(Bench Clearing)! 단어 그대로 벤치를 깨끗이 비우고 모두 그라운드로 뛰쳐나와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을 이어간 것이다.
벤치 클리어링은 야구, 축구, 농구와 같은 구기 종목에서 주로 일어난다. 단체 종목이다 보니 팀 전체의 단합과 조직력, 소속감 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면 모든 선수가 그라운드로 나가는 것이 관례다. 상대방에게 단합력을 과시해 우리 팀 선수가 다치는 것을 막고, 싸움도 막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메이저리그의 경우 벤치 클리어링 상황에서 나가지 않은 선수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는 팀도 있다.
벤치 클리어링은 통상의 경우 상대방과의 말싸움에 그친다. 하지만 좀 더 흥분하게 되면 일부 선수는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대개 큰 불상사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 선수가 다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 경기 규칙에서는 어떻게 정하고 있을까?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규칙 4.06에 관련 조항이 있다. ‘경기 중 금지사항’이라는 제목 아래 (a)의 (2)에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상대팀의 선수, 심판원 또는 관중을 향해 폭언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경우 반칙자는 경기에서 퇴장조치 된다.
대한축구협회는 규칙 12 ‘반칙과 불법행위’의 항목에서 퇴장을 줄 수 있는 반칙의 유형을 정하고 있다. ‘난폭한 행위를 한 경우, 상대 선수 또는 그 밖의 사람에게 침을 뱉은 경우, 공격적/모욕적 또는 욕설적인 언어를 사용 그리고/또는 행동을 한 경우’이다. 야구와 축구는 벤치 클리어링과 관련한 내용을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한편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은 제38조 ‘실격퇴장 파울’이라는 항목을 두고 있다. 실격퇴장 파울은 ‘선수나 팀 벤치 인원의 과격하고 비신사적인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농구는 특이하게도 제39조에서 ‘싸움’이라는 항목을 둬 벤치에 있는 선수들의 경기장 난입을 금지하고 있다. 즉 ‘싸움은 둘 또는 그 이상의 상대방(선수 및 팀 벤치 인원) 사이의 육체적인 충돌이다’라고 규정하면서 ‘이 조항은 싸움기간 또는 싸움으로 이어지는 상황 동안 팀 벤치구역 경계를 벗어나는 팀 벤치인원에게만 적용된다’라고 적용범위를 한정한다. 벌칙은 ‘교체선수, 제외된 선수 또는 팀 벤치의 다른 인원이 싸움기간 또는 싸움으로 이어지는 상황 동안 팀 벤치구역을 떠나면 실격퇴장’ 된다. 즉 벤치 인원의 가담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아무래도 다른 종목에 비해 몸싸움이 심한 농구의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 일반인의 경우라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벤치 클리어링이라는 용어는 선수들이 벤치를 박차고 나와 상호간에 대치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를 상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 정도에 그치는 경우라면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인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친구나 이웃 간에 언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운동 경기라고 해서 특별히 엄격하게 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언쟁의 정도를 넘어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할 때다. 나아가 1대1의 싸움이 아닌 여러 선수들이 폭력에 가담하는 경우다. 일반적으로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면 폭행죄나 상해죄로 처벌받게 된다. 다만 상해가 발생하지 않은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로서 당사자들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처벌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한편에 2인 이상이 가담하게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 경우에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이 적용돼 형법에서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될 뿐만 아니라 반의사불벌죄의 적용도 받지 않게 된다.
● 법적으로 문제되지는 않을까?
2인 이상이 가담한 범죄를 공범이라고 하는데, 공범이 되기 위해서는 공동가공의 의사와 공동행위의 분담이 필요하다. 즉, 말리려는 의사로 벤치를 박차고 나간 경우는 ‘공동가공의 의사’가 없는 것이다. 상대편에 대해 폭력을 행사할 의사로 나가 직접적으로 폭력에 가담하거나 최소한 이를 응원하는 정도까지 이르러야 공범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벤치 클리어링은 우리 선수와 상대방 선수가 싸움으로 인해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 혹은 우리 팀의 단합을 과시하기 위해 필요한 정도에 그쳐야 한다. 이를 넘어서는 경우 스포츠가 허용하는 자율성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실제로 KBO리그에서도 1990년 6월 5월 삼성과 OB(현 두산)의 경기 도중 폭력 사태가 발생해 양 팀 선수 1명씩 형사 입건된 사례도 있다. 당시에는 말리던 구심의 갈비뼈가 부러져 전치 3주의 상해를 입었고, 한 선수는 턱뼈가 부러지고 얼굴을 20여 바늘 꿰매야 하는 부상을 입었다고 하니 누가 봐도 게임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게 분명해 보인다.
● 사회적으로도 용인될까?
양 팀 선수들이 말싸움만 하는 정도에 그친 경우에는 게임의 일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수들이 뒤엉켜 물리적인 폭력이 행사되는 경우까지 게임의 일부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 경우도 일반적으로는 출장정지나 벌금 등 징계에 그치고 형사처벌로 이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곧 폭력을 용인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관중이나 시청자, 상대팀과 상대 선수에 대한 배려를 생각해보면 어디까지가 게임의 일부인지 좀 더 명확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