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당신의 취미를 찾아 드립니다’란 모토를 내세운 업체가 등장했다. 궁금한 마음에 이 업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심리검사 같은 33개의 질문에 차례대로 답하니 성격을 창작형, 오락형 등으로 자세히 분석해줬다. 여기에 돈을 내면 드론, 플라모델 만들기처럼 한 분야의 전문가인 ‘하비(hobby) 큐레이터’가 맞춤형 미션을 담은 취미 박스를 매달 보내 준다고 했다. ‘취미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늘면서 새로 생겨난 이색 서비스인 셈이다.
‘덕후’의 시대다. 한 가지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에서 유래한 ‘덕후’는 한때 유별나고 특이한 사람들을 지칭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TV에서도 일본 만화 캐릭터나 온갖 전자제품 모으기 같은 별별 취미생활에 열 올리는 연예인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덕밍아웃(덕후+커밍아웃)’이란 신조어가 이젠 구문이 됐을 정도다. 이런 세상에 취미 찾아 주는 서비스라니….
“30대 중반에 취미 하나 없는 저, 비정상인가요?” “뭔가 즐기고는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조언 좀 해주세요.”
직장인과 취업준비생들이 모인 한 인터넷 카페에선 ‘취미 없음’을 토로하는 게시글이 종종 올라온다. ‘진짜 취미가 없는데 이력서엔 뭘 써야 하나’ ‘취미생활은 하고 싶은데 너무 피곤하다’는 식이다. 이런 글엔 ‘나도 낮잠 자는 것밖엔 취미가 없다’ ‘그나마 맥주 마시며 TV 보기가 유일한 취미’ 등 공감 댓글이 적잖게 달린다. 한 20대 남성은 “취미가 꼭 거창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뭔가 즐기며 살 줄 몰랐던 것 같아 오히려 덕후들이 부럽다”고 털어놨다. 덕후의 세상이건만 한쪽에선 취미가 없어 슬픈 이들이 아우성친다.
꼭 젊은 사람들만 그런 건 아니다. 며칠 전 30년간 직장생활 끝에 은퇴를 앞둔 50대 지인에게 따끈한 신간을 한 권 선물했다. 일본 의학박사 사이토 시게타가 쓴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란 책이다. ‘수십 년 정신없이 달려온 당신, 뒤늦게나마 취미를 찾고 즐겁게 살라’는 게 책의 주제다. 그런데 그는 책 선물을 받자마자 “은퇴한다니까 주변에서 제일 많이 하는 조언이 취미 찾으란 건데 이게 하루아침에 찾아지질 않더라”라고 했다.
얼마 전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두 개가 씁쓸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직장인 1152명 중 무려 65.0%가 ‘취미가 없다’고 답했다. 여유가 없고 먹고살기 바쁜 데다(57.9%) 피곤해서(20.8%) 그렇다. 직장인 707명을 대상으로 벌인 다른 설문에선 ‘살면서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되는 항목 톱5’에 ‘취미·여가’가 1위로 꼽히기도 했다. 이쯤 되면 취미 잔혹사다.
양경수의 그림 에세이 ‘실어증입니다, 일하기 싫어증’에 묘사된 직장인들의 모습에 그 답이 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내 얘기 같다’며 화제가 된 이 책의 ‘퇴근’과 ‘주말’ 카테고리는 특히 눈물겹다. 퇴근 후 독서나 할까 했지만 책만 펴놓은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잠이 들어버린다. 주말엔 오랜만에 전시회도 가고 쇼핑도 하겠노라 잔뜩 계획을 세웠지만 현실은 피곤에 절어 방바닥만 뒹군다. 이 모습에 공감하는 이들에겐 어쩌면 덕후들의 세상은 여전히 멀고 먼 딴 세상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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