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인이 ‘뉴 이어스 레졸루션(New Year’s Resolution)’이라 부르는 ‘새해 결심’의 유래는 기원전 4000년경 바빌로니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새해를 맞아 신 앞에서 ‘묵은해에 빌렸던 돈과 물건을 갚는다’는 각오를 다졌다.
정유년(닭띠) 새해 많은 이들이 ‘다이어트’ ‘금주’ ‘금연’ ‘외국어 공부’ 등의 새해 결심을 세운다. 취지는 좋지만 대부분 ‘작심삼일로 끝난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결심을 하는 당사자도 이를 듣는 주변인도 “오늘 날씨 어때?” 정도의 가벼운 말로 치부하는 이유다. 영국 유명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스먼 브리스틀대 교수가 새해 결심을 한 영국 성인 30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8%가 이를 지키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래서 오히려 엉뚱하고 판에 박히지 않은 새해 결심을 하는 사람들에게 더 눈길이 간다. 미 금융전문매체 슈퍼머니에 따르면 유명 방송인 제이 리노의 올해 결심은 ‘뚱뚱해지기’다. 과거엔 미국 비만 인구가 정상 체중 인구보다 적었지만 이제 비만 인구가 급증했다. ‘비만’과 ‘정상 체중’의 정의가 달라져야 하고 지금보다 살이 조금 더 쪄도 괜찮다는 주장이다.
배우 데이비드 스페이드의 새해 결심은 ‘흡연’이다. 그는 “세상에서 담배를 끊는 일보다 쉬운 일은 없다. 흡연이 아닌 상태는 모두 금연이다. 어제는 금연을 했고 오늘은 흡연을 했다”는 기발한 논리를 댔다.
이 밖에 ‘사람들과 교감하는 시간을 줄이고 휴대전화를 갖고 노는 시간 늘리기’ ‘매년 겨울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따뜻한 플로리다로 이사 가기’ 등도 있다. 며칠 하다 그만두고 말 뻔한 새해 결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즐겁게 살자는 취지의 신년 목표다.
톡톡 튀는 이런 새해 결심이 진솔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뒤에 자리한 현대인의 강박 때문이다. 미국의학협회(AMA) 조사에 따르면 1920년대 미국 성인의 20%가 새해 목표를 세웠지만 지금은 절반이 이를 한다. 또 그 목표는 대부분 자기 계발이다. 외모를 가꾸고 스펙을 쌓고 더 많은 돈을 벌어야만 풍진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비롯한 것이다. 매년 지키지도 못할 새해 결심을 하고, 사흘 만에 이를 포기하고, ‘역시 난 안 돼’라는 자학에 빠지게 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만드는 셈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삶은 마법처럼 확 달라지지 않는다. 나를 단련하고 계발해도 뜻이 안 맞는 배우자, 골치만 썩이는 자식, 전생의 원수였을 듯한 상사, 양극화가 고착화된 세상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그럴 바엔 하루하루를 만족하며 즐기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자세가 낫지 않을까.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 것, 현실이 미래를 잡아먹지 말 것, 미래를 말하며 과거를 묻어버리거나 미래를 내세워 오늘 할 일을 흐리지 말 것.” 신년 벽두에 박노해 시인의 ‘경계’가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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