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 갇힌 도시’ 숨통… 지상공간 확보해 도심재생 구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6일 03시 00분


[고속도로 지하화 본격 추진]국토부 “올 하반기 사업지 최종선정”

 정부가 도로의 지상과 지하를 복합 개발하는 ‘입체도로’ 카드를 꺼낸 것은 도시 과밀화로 일부 지역에서는 도시의 수평적 확장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교통난 해소를 위해 도로를 확장하면서도 주민들의 생활 요구를 충족할 수 있게 개발해야 하지만 지상에는 더 이상 마땅한 땅이 없는 곳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한정된 공간을 지하(도로)와 지상(주거·상업·녹지 등)으로 나눠 입체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정부 재정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사업성을 높여 민간 투자로 도심 재생을 추진하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 ‘지하도로-지상 개발’ 입체적 활용

 15일 국토교통부 고위 관계자는 “도로로 단절된 도시 공간을 잇고 교통난도 해소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라며 “민간의 창의성을 활용해 하반기(7∼12월)에 입체도로 선도 사업을 선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입체도로 선도 사업의 유력한 후보군으로는 경부고속도로, 경인고속도로 등의 도심 구간이 꼽힌다. 이 구간은 교통 수요가 증가하면서 극심한 차량 정체가 발생해 고속도로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또 당초 도시 외곽에 있던 도로가 도시 확장으로 도심 내부로 들어오면서 해당 지역을 양분해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지적도 많았다.

 고속도로 지하화 논의는 이미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3월 국토부는 경인고속도로 서인천 나들목∼서울 신월 나들목 11.66km 구간을 지하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현재 민자 적격성 검토 절차를 밟고 있다. 서울 서부간선도로(10.33km)와 제물포터널(7.53km)은 이미 지하화 공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12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동부간선도로(21.9km)를 2026년까지 2개 도로로 나눠 지하화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입체도로’가 허용되면 물밑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부고속도로 서울 구간(한남 나들목∼양재 나들목) 6.8km의 지하화 사업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도로 상부 개발을 전제로 한 대략적인 개발계획(안)도 나온 상태다.

 지난해 11월 이정형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는 ‘경부간선도로 재생 마스터플랜’을 통해 3층 개발을 제안했다. 상습 정체구간인 양재 나들목∼잠원 나들목(약 6km)에는 자동차 전용 대심도 지하터널을 지하 40여 m 아래에 튜브형 복층구조로 조성한다. 양재 나들목∼반포 나들목(약 5.4km) 구간엔 상·하행 도로가 나란히 놓이도록 저심도 터널을 만든다. 지상부는 나들목 터 등을 활용해 복합문화 상업지구로 꾸미자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도로 상부의 복합 개발이 허용되면 지하화의 걸림돌로 꼽혔던 막대한 개발비용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는 도로 상부 개발이 제한돼 사실상 개발비용을 요금 인상으로 충당해야 한다. 경인고속도로 및 제물포터널 지하 구간으로 서울과 인천을 오갈 경우 왕복 1만 원에 가까운 ‘통행료 폭탄’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 도심재생 효과…해외서도 지하화 활발

 고속도로 입체화 사업으로 민간 자본의 참여가 활성화되면 노후한 사회간접자본(SOC)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정형 교수는 “고속도로 입체화 사업은 단순한 강남 개발이 아니다”라며 “정부의 재정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민간 자본을 활용한 지상-지하 복합 개발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입체도로’가 고속도로뿐 아니라 일반도로에까지 확장될 경우 가로 주택 정비 등 도심재생 사업도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바둑판처럼 나눠진 도로 안에서만 개발이 가능한 상태여서 개발을 하더라도 주차장, 공원 등의 편의시설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간선도로 지하화를 통한 도심재생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미국 보스턴 시가 1991∼2007년 추진한 ‘빅디그(Big Dig)’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푸른 괴물(green monster)’로 불리던 4km 길이의 고가도로를 지하 터널로 대체하고, 지상 공간에는 녹지와 건물을 배치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M30, 프랑스 파리의 ‘A-86’, 영국 런던의 ‘도크랜드’, 일본 도쿄(東京)의 시부야 역세권 개발과 도라노몬 힐스 복합 개발 등도 도심을 단절하는 도로를 지하화하고 상부에 인프라를 새로 확충한 사례다.

 전문가들은 ‘입체도로’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장기적인 로드맵을 갖고 추진해야 난개발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교통난 해결과 도시 효율화를 위해 도로 지하화는 꼭 필요하다”며 “다만 주변 개발을 통해 투자금액을 회수할 만큼 사업성이 충분한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김재영 redfoot@donga.com·강성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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