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원장이 자신의 '아이행복카드'로 원생 수십 명의 보육료를 결제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이는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이러한 사실을 진작부터 인지하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어린이집이 보호자들의 카드를 맡아 놓고 대신 결제하는 것 역시 문제의 소지가 있음에도 시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보육료 결제를 담당하는 사회보장정보원 관계자는 어린이집에서 보육료를 결제할 때 다른 사람 카드로도 결제가 된다는 이야기를 다수의 어린이집 원장들로부터 들어왔다고 밝혔다. 자신의 아이행복카드로 원생 수십 명의 보육료를 결제해 부당이득을 취한 경기 이천시 어린이집 원장이 적발되기 전에도 중복결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부 어린이집이 보호자들의 동의를 구해 아이행복카드를 맡아 놓고 대신 결제한다는 사실도 파악하고 있었다. 만약 보호자로부터 신고가 들어올 시 해당 어린이집은 지도점검 대상이 된다. 하지만 현장 실사 등을 통해 이러한 일이 만연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복지부는 시정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현재 ARS로 보육료를 결제하면 꼭 어린이집 원장이 아니어도 쉽게 다른 아이 것을 결제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아이행복카드 명의자인 보호자와 보육료 수혜자인 아동을 매칭 할 수 있는 정보가 복지부에 없어 누구나 인증번호만 알면 다른 아이 것을 결제할 수 있다. 애초 시스템을 만들 때 왜 이러한 정보를 반영하지 않았는지 묻자, 담당자로부터 "개인정보라 민감하다"는 취지의 황당한 답변만 돌아왔다.
복지부와 정보원 측은 어찌되었든 아이 한 명당 한 달에 한 번만 보육료가 나가도록 돼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한 카드에서 중복결제가 가능한 것은 맞지만, 한 아이가 보육료를 중복 수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천 어린이집 사건에서 보듯, 원장이 여러 아이들의 보육료를 자신의 카드로 결제한 뒤 사회보장정보원으로부터 돈을 받고 카드 결제를 취소하면 당장 급하게 쓸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등 부정행위의 여지가 있었다.
또 어린이집 재원일수가 월 11일 미만인 아동에 대해 보육료를 쉽게 부정 수급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재원일수 11일 미만이면 정부가 제공하는 무상 보육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해당 아이의 보호자가 보육료를 직접 어린이집에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원장이 보호자 카드를 소지한 경우라면 출석일수를 11일 이상으로 조작한 뒤 카드로 보육료를 결제하면 그만이다. 부정 수급의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뒤늦게 문제를 인식한 복지부는 이천 어린이집 사건 적발 두 달 만인 지난해 10월부터 사후 모니터링 시스템 준비에 들어갔다. 부모가 아닌 사람이 결제할 경우 본인이 법정후견인인지 친척인지 등의 정보를 넣게 하고, 보호자로 허위 등록을 경고하는 문구도 띄울 예정이다. 카드사와 공조해 다수 어린이를 결제한 뒤 바로 카드를 해지하는 경우 선지급을 미루게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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