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어제 내년부터 6년 동안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를 내리는 반면 고소득 직장인과 피부양자의 보험료를 높이는 3단계 건강보험료 개편작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수입을 추정해 건보료를 매겨온 평가소득제도가 17년 만에 폐지되고 연소득 3400만 원 초과자는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지역가입자 606만 가구의 건보료 부담이 줄어드는 반면 직장가입자 26만 가구와 피부양자 47만 가구의 건보료 부담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민감한 건보료 문제에 대해 정부가 지금 결론을 내린 것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 해소가 화두로 떠오른 현 국면이 개혁의 적기라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2014년 2월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 당시 세 모녀는 극빈 상태에 내몰렸지만 평가소득제도 때문에 월 4만8000원의 건보료를 내야 했다. 여기에 연금 등 월급 이외의 소득이 많은 사람들이 피부양자로 무임승차하는 사례가 겹쳐 국민적 분노를 샀다.
그러나 다음 정부도 아닌 차차기 정부까지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장기 계획에서 개혁 의지를 읽기는 어렵다. 대선과 총선 등을 거치면서 불거질 논란을 돌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건보료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2조3108억 원의 재정이 들 것으로 추산했지만 이게 재정 소요의 전부라고 보기도 어렵다. 과도기 동안 보험료를 더 내는 세대에 대해 인상분을 면제해주는 등 초기적응 비용을 감안해 재정 투입액을 추산했지만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더해질 경우 실제 들어가는 재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이번 개혁의 핵심은 소득이 있으면 누구나 건보료를 공평하게 부담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률은 50%에도 못 미친다. 이런 ‘깜깜이 개혁’으로는 제도 개편의 혜택이 일부에 편중되면서 분배 구조가 더 왜곡될 수밖에 없다. 소득파악률은 세무조사와 세제개편 작업이 필요한 국가 재정개혁 과제다. 국세청이 개발한 납세 정보화 시스템인 ‘엔티스(NTIS)’에 담겨 있는 1800억 건의 데이터를 활용해 탈루 소득을 파악하는 동시에 간이과세제도 개편 등을 통해 국세청의 레이더를 빠져나가는 소득부터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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