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행정고시 폐지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4일 03시 00분


 더불어민주당 초·재선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와 그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가 5급 공채시험인 행정고시를 없애고 7급 공채시험과 합치는 개편안을 19일 제안한 뒤 행정고시 수험생들이 발끈하고 있다. 더미래연구소의 제안은 물론 민주당의 당론은 아니다. 그러나 행시 준비생들 사이에서는 우리도 사법시험 준비생들 같은 처지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합격자 비율이 가장 높은 서울대에는 행시 폐지를 반대하는 대자보까지 붙었다.

 ▷더미래연구소의 최지민 선임연구원은 개편 이유로 “7급, 9급 공무원 합격자 대부분이 대학 졸업자인 만큼 행시 합격자와의 능력 차이가 거의 없다”는 점을 들었다. 7급은 말할 것도 없고 9급만 하더라도 ‘9급=고졸’ 등식이 깨진 지 오래다. 9급도 국가직 지방직 할 것 없이 거의 다 대졸이다. 다만 같은 대졸이더라도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 대학 사이에 주로 준비하고 합격하는 공무원 채용시험이 달라 대졸이라는 공통분모가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프랑스에서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공무원은 주로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이다. ENA 같은 학교를 그랑제콜이라 한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프랑스처럼 전국 국공립대학을 통합하자는 제안을 했다. 프랑스가 대학을 통합해 파리1대학, 2대학 식으로 평준화한 이후 우수한 고교 졸업생은 대학을 가지 않고 2년을 더 공부해 그랑제콜을 간다. 기업만 해도 간부직 사원은 대부분 경영 관련 그랑제콜 출신이다. 대학을 나온 학생들은 하위직 공무원이나 기업 평사원이 된다.

 ▷공직을 민간에 개방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그러나 민간 개방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고위직의 책임 의식이다. 프랑스 공직이든 기업이든 간부는 스스로 밤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나와 일한다. 그래서 프랑스가 굴러간다. 요즘 한국 군대에 장교도 사병도 다 대졸이다. 그렇다고 사병 중에서 장교를 뽑지는 않는다. 간부가 되는 별도의 길을 없애려면 간부의 책임의식을 확보할 다른 방도를 생각해 보고 제안을 해도 해야 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더불어민주당#더좋은미래#행정고시 폐지#7급 공채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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