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의 마음의 지도]상실과 애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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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오래전에, 학회장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생각보다 훨씬 더 늙어 보였습니다. 그간의 사정이 짐작이 되는 이야기를 가끔 편지로 듣기는 했었습니다만, 그가 격하게 말을 뱉어냈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무책임하게 그렇게 말하면 절대로 안 된다”고. 평소에 알던 이성적이고 차분하던 모습과 너무나 달라 당황했습니다. 다 큰 젊은 아들을 암으로 잃은 노년의 그는 우울과 분노를 아직 털어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미국정신의학회가 펴낸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에서 ‘애도’를 끝내야 하는 기간을 너무 짧게 규정한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랬던 겁니다. 솔직히 그 순간에는 명망 있는 정신분석가인 그가 아들의 죽음을 학술적 내용에 그렇게 연결시키는 행위가 다소 당혹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받은 고통스러운 항암치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식을 앞서 보낸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태어나 산다는 것은 상실의 연속입니다. 출생 자체가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즐기던 편안함과 안전함을 잃어버리는 행위입니다. 죽을 때까지 우리는 사람, 자리, 물건, 돈은 물론이고 이상, 소망, 꿈, 희망을 떠나보냅니다. 그중에 으뜸으로 치는 것이 배 아파 낳아 정성으로 키운 자식을 잃는 일입니다. 정말 끔찍합니다. 그 다음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배우자를 잃는 일이 될 겁니다.

어떤 상실이든 자연히 ‘애도’가 뒤따릅니다. 애도를 통해 빈 마음을 잘 정리해야 평상심을 되찾고 삶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도의 과정이 순탄하지 않으면 상실의 후유증을 겪습니다. 극단적으로는 심한 우울증이나 정신병에 걸려 고통받습니다. 정신을 추슬러야 합니다. 안간힘을 써서라도 마음을 지켜내야 합니다. 옆 사람들도 현명한 방법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도와줘야 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의 모습과 목소리가 마음을 떠나지 않습니다. ‘애도’의 감정은 늘 두 겹입니다. 이제는 그만 놓아주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계속 붙잡고 싶은 마음이 부딪치며 갈등이 이어집니다. 그 자리에서 좀처럼 움직이기 어렵지만, 애도의 감정은 주변으로 강하게 퍼집니다.

오늘도 길거리의 현수막은 바람에 펄럭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실종된 자식을 찾으려는 부모의 눈물이 낡은 현수막에서 보는 사람의 마음으로 들어와 번집니다. ‘실종’은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애도’는 정지되고 속만 타들어 갑니다. 죽은 줄은 알지만 유해를 찾지 못한 경우도 그렇습니다. ‘애도’는 진행 불가 신호를 받습니다.

어느 문화권에서나 장례 절차가 상당 기간, 복잡하게 진행되는 이유도 그 안에 오랜 세월을 통해 축적된 애도 과정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장례는 늘 전해 내려온 규범과 의례에 의해 서서히 이루어집니다. 떠난 사람을 위한 예의이자, 남은 사람들의 애도를 촉진시키기 위한 문화적 배려이기도 합니다.

애도에 유효기간이 있을까요. 애도는 평생 가는 일입니다. 서두른다고 해서 서둘러지는 일은 아닙니다. 세월이 가면서 점점 기억이 희석될 뿐입니다. 그렇지만 애도 과정에 나타나는 방해꾼들은 위험합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상실의 부작용과 후유증이 크게, 오래 이어집니다. 애도의 대상이 사회적 정치적인 움직임의 중심에 서게 되면 더욱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마음은 흔들리고 애도의 길은 멀어집니다. 내 마음을 알아준다던 방해꾼들은 결국 무심하게 사라집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실행이 유예된 애도는 마음과 몸을 위협합니다. 식사, 수면, 운동의 일상이 흔들리면서 몸은 점점 쇠약해집니다. 평소 앓고 있던 병들은 당연히 더 심해집니다. 마음의 부담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흡연, 음주, 약으로 부담을 덜어내려는 비이성적 노력은 불행하게도 상태 악화로 이어집니다.

상실로 나타나는 정신 증상에서 불안, 우울, 분노는 기본입니다. 분노가 자신에게 되돌려져 죄책감으로 이어진다면 심한 우울증의 늪에 빠집니다. 상실의 원인이 자신이라고, 예를 들어 자식이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믿게 되는 순간 부모의 삶은 완전히 파괴됩니다. 밖으로 표출된 분노는 도우려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멀어지게 합니다. 분노 조절이 어려우면 스스로를 해치거나 남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소중한 대상을 잃어버린 사람인 자신과 그렇지 않아서 나를 이해할 수 없을 다른 사람들로, 세상을 두 편으로 나누어 본다면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이 더 멀어집니다. 분노, 섭섭함, 사회적 고립이라는 악순환이 지속됩니다. 잃어버린 자식과 자신을 지나치게 동일화하면 스스로 목숨을 버릴 생각도 하게 됩니다. 평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을 수도 있습니다.

자식만을 기리며 사는 삶이 부모의 삶일 수는 없습니다. 먼저 떠난 자식도 그런 삶을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애도 과정이 순탄하게 이루어지려면 어렵더라도 자식의 삶과 자신의 삶 사이에 심리적인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해야만 합니다. 애도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적응하지 못하고 후유증을 심하게 겪고 있다면 때를 놓치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을 자식을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배신행위로 여기거나, 지나친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낀다면 애도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마음 다스리기 달인’이라고 간주되는 정신분석가에게 벌어진 자식의 죽음, 그에 따른 죄책감과 일탈 행동, 그리고 애도 과정에 관심이 있으시면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 영화, ‘아들의 방’을 보시길 권합니다. 정신분석가도 자신의 삶에서는 평범한 인간임을 발견하실 겁니다.

이 글에는 정신분석가 두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현실의 한 사람과 영화 속 다른 사람입니다. 그들을 앞과 뒤에 배치시켜 상실과 애도는 우리 삶에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순리대로 잘 겪어야 참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사람이란 늘 잃어버리고, 잃은 것을 애도하며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하직함으로써 뒤에 남은 사람들이 자신을 애도하도록 하는 묘하게 취약한 존재입니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상실감#애도#마음 다스리기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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