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아이돌 지망생’ 장문복(22)만큼 열띤 응원을 받는 이가 또 있을까 싶다.
그는 중학생이었던 2010년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2’에 출연해 특이한 목소리와 난생처음 보는 묘한 랩 스타일로 화제가 됐다. 진지하게 랩을 하던 그의 모습은 ‘힙통령’이라고 불리며 몇 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인터넷에 ‘유머’ 동영상으로 떠돌았다. ‘별 희한한 사람 다 봤다’ 식의 조롱 섞인 댓글 역시 몰고 다녔다.
미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H 스미스가 쓴 ‘쌤통의 심리학’이란 책에선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 비결이 타인의 고통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이른바 ‘쌤통 심리’를 제대로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선 실력자뿐 아니라 언뜻 ‘전파 낭비’ 같은 형편없는 공연과 이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잔인한 혹평도 일부러 비중 있게 다룬다. 재능 없는 이들이 ‘망신’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은근히 통쾌함을 느끼는 이들이 적잖고, 프로그램 역시 그걸 노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잔혹한 것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본성이라지만 요즘 장문복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쌤통 심리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7년 전 굴욕을 맛보며 오디션 프로그램의 대표적 ‘희생자’로 꼽혔던 그는 최근 방영 중인 같은 채널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선 시청자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세상의 냉정한 평가와 조롱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꿈을 찾아가는 모습이 멋있고 감동을 준다는 평이다. 초반엔 꼴찌반인 ‘F등급’으로 출발했지만 실력도 점차 나아져 5일 방송에선 101명 중 14위를 차지했다. 그의 영상과 기사엔 ‘앞으로 ‘,(랩 시작할 때 쓰는 말) 길’만 걷게 해주겠다’ ‘그때 웃어서 미안하다’ 등의 응원 댓글이 넘친다.
2009년 ‘슈퍼스타K1’을 시작으로 국내에 오디션 프로그램이 등장한 지도 벌써 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원조 격인 ‘슈퍼스타K’는 우후죽순 쏟아진 오디션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낮은 시청률을 면치 못하며 ‘임시 휴업’을 선언했고, 한때 19.1%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던 ‘K팝 스타’는 시즌6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눈에 띄는 점은 초창기와 비교해 ‘1등’의 의미가 예전만 못하다는 거다. 1등 프리미엄은 점차 약해져 언제부턴가는 누가, 어느 시즌의 우승자였는지 기억조차 잘 안 난다. 비슷한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너도 나도 1등이 되니 의미가 퇴색한 것도 이유겠지만 1등을 향해가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인 듯싶다. 장문복처럼 실력은 아쉽더라도 목표를 향해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이들이 1등 못지않게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도 그래서다.
아마 수년간 오디션 프로그램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저마다 느꼈을 것이다.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은 화려한 1등보다는 자기 나름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대다수 평범한 참가자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말이다. 심사위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목청껏 소리 지르는 모습, 때로는 비난에 직면하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쓰는 참가자들의 모습에서 나와 내 주변 누군가의 모습이 스치니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장문복의 고군분투를 지켜보며 문득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람들의 웃음을 샀던 ‘춤통령’과 ‘락통령’ 등 다른 화제의 인물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들도 다시 한 번 TV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웃음 대신 따뜻한 응원을 보낼 이들이 그때보단 많아졌을 텐데,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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