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10여 년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아쟁총각’을 아는지. 러시아 가수 ‘비타스(Vitas)’는 믿기 힘들 만큼 높은 음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흡사 아쟁과 비슷해서 국내 누리꾼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우연히 그의 노래 ‘스마일(Smile)’을 듣고 시쳇말로 ‘빵 터졌다’. 어떻게 사람이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싶어서다. 노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너무 웃어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 덕분에 실컷 웃고 난 뒤 문득 이렇게 큰 소리로 웃어본 게 얼마만인가 싶었다.
사람의 웃음에도 등급을 매길 수 있다면 어떨까. 진심에서 우러나와 행복하게 활짝 웃는 것은 A등급, 타인에 대한 애정이나 공감으로 짓게 되는 미소는 B등급, TV 오락 프로그램이나 재미있는 이야기에 큰 의미 없이 터뜨리는 웃음은 C등급 정도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보다 덜 바람직한(?) 웃음도 있다. 황당하거나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는 것은 D등급, 억지로 마지못해 웃는 웃음은 최악인 F등급을 줄 수 있겠다. 물론 순전히 개인적인 기준이다.
이토록 실없는 상상을 해본 이유는 나이가 들수록 A등급보다 F등급의 웃음을 터뜨리는 일이 많아지는 것 같아서다. 어릴 때 기자는 잘 웃지 않는 아이였다. 그로 인해 인상이 차가워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구태여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던 시절이었다. 달라진 건 취업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부터다. 좋은 인상을 줘야 한다는 부담에 억지로 웃는 표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일을 시작한 뒤에는 많은 사람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마음에 없이 웃는 능력도 생겼다.
누구나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본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에는 이런 삶에 지쳐 도시를 떠나 한적한 호숫가에 정착한 부부가 나온다. 도시에서의 상처를 쉽게 치유하지 못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다정하게 말한다. “여기선 억지로 웃을 필요 없어.” 인터넷에는 ‘잘 웃는 법’에 대한 글이 넘쳐난다.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선 웃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겐 웃는 것이 하나의 업무 스트레스가 돼버렸다.
억지로 웃어야 하는 일이 많을수록 삶은 피곤해지고 ‘진짜 웃음’은 사라진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은 웃음에도 적용되는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스스로 웃음을 찾아 나선 사람들도 있다. 친구 A는 회사 생활이 유독 힘든 날이면 퇴근 후 집에서 ‘웃기는 동영상’을 찾아본다. 포털사이트에서 TV 예능이나 해외의 웃기고 황당한 사건을 모은 동영상을 검색하는 것이다. “보면서 실컷 웃고 나면 낮에 있었던 힘든 일이 조금은 잊혀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미국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조지 베일런트는 그의 저서 ‘행복의 조건’에서 웃음을 행복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꼽았다. 웃음을 바탕으로 한 낙관적인 성향이 삶을 바꾼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미국 하버드대 졸업생을 포함한 800여 명의 삶을 70여 년간 추적 연구한 결과물이다. 결국 남에게 잘 보이려는 ‘억지 웃음’을 배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웃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답이다.
기자를 웃게 해준 비타스의 노래 ‘스마일’은 사실 그가 어머니를 여의고 슬픔을 잊기 위해 만든 곡이다. 라디오에서 소개해준 가사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웃어라, 밖의 비가 그치지 않아도. …웃어라, 당신의 영혼이 상처 입어도. …웃어라,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웃어라, 그러면 너의 영혼은 새 힘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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