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15일 취임 일성(一聲)은 ‘기업 달래기’였다. 전날 취임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 이어 새 정부 경제팀의 주요 수장들이 잇달아 재계에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추경) 등의 경기 부양책을 준비 중인 정부가 기업들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며 채용 확대 등을 독려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 ‘기업 달래기’ 나선 경제팀 수장
김 부총리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취임식에서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규제를 타파하는 것도 시급하다. 공정한 시장 경쟁 룰 위에서 하는 기업 활동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역할을 강조한 김 부총리의 발언은 김상조 위원장이 “재벌개혁은 기업들을 옥죄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성장의 모멘텀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선 때부터 강력한 경제민주화 방침을 밝혀 온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펴 경제성장 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을 의식한 것이다. 관(官) 주도 일자리 창출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산업계에 대한 ‘보듬기’라는 관측도 있다.
김 부총리는 새 정부 경제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일자리 중심 선순환 경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끊어진 경제의 선순환 고리를 다시 이어서 잃어버린 경제 역동성(dynamics)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혁신으로 성장을 이끌면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기업, 열심히 일하는 개개의 경제 주체가 우리 경제의 주역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는 정부의 이런 태도에 “일자리 창출은 상공업계의 가장 보람 있는 책무”라고 화답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과 만나 “막연한 불확실성만 가지고 우려와 반대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정부 정책에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일자리위원회가 재계와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책상머리 행정은 그만” 직원들에 경고도
재계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는 대신 김 부총리는 공무원 조직의 이른바 ‘책상머리 정책’에 강한 질타를 던졌다. 그는 “우리가 언제 한 번 실직의 공포를 느껴 본 적 있습니까. 직원들 월급 줄 것을 걱정하는 기업인의 애로를 경험해 본 적 있습니까”라고 직원들에게 물었다. 이어 “현장에서 작동하는 정책을 만들자”고 강조했다.
관가 안팎에서는 지난해 말 대통령 탄핵 정국 이후 느슨해진 관가 분위기를 지적한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6개월여의 ‘국정 공백기’ 동안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정책을 구상하기보다는 차기 정권 눈치 보기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기재부의 한 국장급 관료는 “김 부총리가 2014년 7월 공직에서 퇴임한 후 대학 총장으로 외부에 있으면서 찾은 공직사회의 문제점을 첫 당부로 꺼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취임식 직후 연 기자간담회를 통해 부동산·세금 정책 등에 대한 개략적인 구상도 밝혔다. 그는 “부동산 문제는 경기와도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어 세심하게 보고 있다”며 “선별적, 맞춤형 대책을 만들고, 실수요자 거래가 위축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소득세나 법인세 등의 명목세율 인상은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연내 증세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이어 “재정지출 구조조정 등 여러 노력을 통해 명목세율을 인상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수단을 최대한 동원해 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 부총리는 이날 제주에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연차총회 참석차 한국을 찾은 진리췬(金立群) AIIB 총재를 만났다. 한국과 AIIB는 AIIB 사업준비 특별기금으로 올해 안에 800만 달러를 내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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