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내세워 “野 인사압박 부당”… 문재인 대통령 마이웨이 선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6일 03시 00분


[靑-野 ‘장관인선 갈등’ 격화]수석회의서 강경화 임명강행 표명

‘靑 인사검증 실무’ 민정-인사수석 대화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왼쪽)이 15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앞두고 조현옥 대통령인사수석에게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통령과 
정부의 노력이 마치 허공을 휘젓는 손짓처럼 허망한 일이 됐다”며 야당을 비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靑 인사검증 실무’ 민정-인사수석 대화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왼쪽)이 15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앞두고 조현옥 대통령인사수석에게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통령과 정부의 노력이 마치 허공을 휘젓는 손짓처럼 허망한 일이 됐다”며 야당을 비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청문회에서 후보자를 강도 높게 검증하고 반대하는 것은 야당의 역할이고 본분이다. 그러나 검증 결과를 보고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한 말이다. 문 대통령은 이어 “대통령은 국민의 판단을 보면서 적절한 인선인지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작금의 인사 난맥 정국에 대한 정면 돌파 선언이자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에서 국회가 아닌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하겠다는 사실상 ‘탈(脫) 여의도 정치’ 선언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발언이다.


○ “강경화 후보자 당차고 멋있다”

문 대통령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를) 임명하면 더 이상 협치는 없다거나 국회 보이콧과 장외투쟁까지 말하며 압박하는 것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야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또 강 후보자에 대해 “제가 보기에 당차고 멋있는 여성이다. 국민들도 지지가 훨씬 높다”고 평가했다. 이어 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를 17일까지 재송부해 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18일 강 후보자를 임명하겠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장관 등 (국회 인준 대상이 아닌) 정부 인사는 대통령의 권한이므로 국회가 정해진 기간 안에 인사청문 보고서를 송부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그대로 임명할 수 있게 돼 있다”고 말했다. 장관 임명에 대한 법적 문제가 없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야당의 임명 반대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못 박은 것이다.

문 대통령이 과감하게 야당을 압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호남 민심을 의식한 국민의당이 강 후보자에 대해 끝까지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도 깔려 있다. 비주류·비외무고시 출신인 강 후보자에 대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전직 외교부 장관들과 여성단체 일각에서 지지를 보내는 상황도 계산돼 있다. 28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출국하는 문 대통령으로서는 외교안보 라인을 조속히 정비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외교부 장관 부재로 한미 외교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미 경제외교를 주도해야 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적임자를 찾지 못해 후보자 지명이 늦춰지고 있는 점도 문 대통령을 조급하게 하는 이유로 꼽힌다.

○ “국민만 보고 간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향후 국정 운영 기조와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더 주목을 끌고 있다.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이 임기 초반 국민의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개혁과 주류세력 교체에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는 ‘마이웨이’ 의지를 밝힌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사실상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는 소신을 피력한 것이란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역대 정권이 그랬듯 검찰, 국방, 재벌, 외교 등 주요 분야는 초기에 적임자를 임명하지 못할 경우 개혁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검찰의 ‘돈 봉투 만찬’에 대한 감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추가 반입 보고 누락 진상조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 등을 강행하며 검찰, 군, 재벌 개혁의 분위기를 조성한 문 대통령이 이제 정치권과의 일전도 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내년 6월 13일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예고한 만큼 문 대통령으로선 본격적인 개헌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개혁 로드맵을 실천할 필요도 있다. 늦어도 내년 초부터는 개헌 정국이 조성되면서 개혁 과제를 추진할 동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회가 아닌 국민에게 호소하고 나선 것은 역대 대통령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 첩첩산중

청와대와 야당이 정면충돌하면서 앞으로 열릴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등은 더 큰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커졌다. 더불어민주당 의석이 120석에 불과하고 국민의당, 정의당이 협조한다고 해도 국회 의석의 5분의 3이 되지 않는 가운데, 국회선진화법 체제에서 보수 야당의 협조 없이는 주요 정책을 실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날 야당에 대승적 협력을 호소했지만, 문 대통령의 강경 발언으로 빛이 바랬다. 민주당 관계자는 “우리도 야당을 해봤지만 청와대가 야당을 무시하고 질주하면 엄청난 모욕감이 들고 오기가 생기기 마련이다”고 우려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유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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