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카드 노사의 잠정 합의안은 원청회사(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양보해 하청업체 근로자의 처우를 개선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하청업체 직원들은 ‘그림자 비정규직’으로 불린다. 대기업 비정규직보다 처우가 열악하지만 목소리를 내기는 더 어렵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 부문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 이후 국민카드가 하청 근로자 문제에 대한 해법을 일정 부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하청 근로자 대우해 회사 경쟁력 높여
국민카드가 하청업체 근로자 처우 개선에 나선 것은 카드, 은행 등 금융권에 비(非)대면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콜센터 직원 관리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고객과의 접점에서 활동하는 콜센터 직원들을 잘 대우해야 회사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금융권 콜센터 직원들은 하청업체에 고용됐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국민카드에는 현재 2500여 명의 하청업체 직원들이 콜센터 등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이 받는 평균 임금은 정규직 직원 평균 임금의 절반 수준으로 알려졌다.
국민카드 노사는 이번 합의에 이르기까지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을 시작한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간 진통을 겪었지만 결국 한발씩 양보했다. 사측은 성과급의 일종인 초과이익분배금(PS) 지급 기준을 깐깐하게 고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노조는 ‘상생’의 취지를 받아들이고 임금을 동결했다. 사측은 절약한 25억 원을 하청업체 직원들 처우 개선에 쓰기로 했다. 25억 원은 국민카드 정규직 임금을 지난해 금융권 평균인 2% 인상했을 때 들어가는 비용이다.
국민카드 노사의 잠정합의안이 21일 표결을 통과하면 국민카드는 복지포인트. 상품권 등 하청업체 직원들의 지원 방안을 짤 계획이다. 고용 계약상 국민카드가 이들에게 직접 임금을 줄 수 없는 만큼 우회 수단으로 지원하려는 것이다. 다만 “하청업체 직원을 왜 우리가 도와야 하느냐”는 일부 노조원들의 반발로 표결이 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카드 노조 관계자는 “하청업체 지원의 취지에는 찬성하지만 보여 주기식의 지원이 되지 않으려면 공감대 형성이 더 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카드 관계자는 “정규직이 한발 양보해 비정규직을 돕는 것은 금융권에서 이번이 처음”이라며 “힘들게 합의한 만큼 좋은 선례로 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 “정부 의식한 일회성에 그쳐선 안 돼”
금융계는 국민카드의 노사 합의가 동종업계와 산업계로 확산될지 주목하고 있다. 독일과 네덜란드 등 실업률이 비교적 낮은 국가들의 경우 노사 대타협을 바탕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카드 사례는 고용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가 양보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국민카드 노사는 합의한 내용을 시스템화하고, 다른 회사들도 산업별로 하청업체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노사 합의가 정부의 일자리 코드를 의식한 일회성 이벤트에 끝나선 안 된다고 경계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고졸 채용,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처럼 이번 ‘비정규직 제로’ 논의도 단기 성과를 내는 선에서 끝나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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