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서 하청업체 근로자의 처우 개선 문제는 풀기 힘든 숙제로 통한다. 원청업체인 대기업이 하청업체의 직원을 직접 고용하지 않아 하청업체 직원이 열악한 처우를 받아도 대기업에 책임을 일방적으로 물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SK브로드밴드가 하청업체 근로자 처우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 자회사를 설립해 하청 대리점 직원을 정규직으로 흡수한 건 이례적이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다른 기업들에 확산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하청업체 근로자 지위에 대해 노동계와 재계는 물론이고 학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사내하청 근로자는 원청회사 입장에서는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간접고용’한 비정규직이다. 반면 하청업체에서는 이런 근로자 대부분이 직접 고용한 정규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출발점부터 문제를 안고 있어 하청업체 근로자 처우 개선 문제에 대한 해법도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노사정 합의를 통해 하청업체의 임금을 일정 수준 보장해주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공부문은 가급적 하청업체 직원을 직접 고용하도록 하되 불가피하게 하청업체를 이용한다면 이들 업체 근로자에게 시장 평균 임금을 주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간의 경우는 하청을 주는 단계가 훨씬 복잡한 만큼 노사정 합의를 통해 ‘직종별, 직무별 표준임금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는 대기업-1차-2차-3차 등 단계가 내려갈 때마다 하청업체의 임금 수준을 직전 단계의 80∼85%로 보장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대기업이 하청업체에 정당한 대가를 줘 하청업체 근로자 처우가 개선되도록 유도하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청과 하청업체 간 임금 격차가 벌어지는 근본 원인은 원청업체가 납품단가를 후려치기 때문이다”며 “하청업체에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개선 방안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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