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지역경제 타격… 일방중단 말도 안돼” 폭염속 시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4일 03시 00분


[한수원 이사회 무산]노조원들, 오전 5시경부터 농성
현관 봉쇄… 이사회장 통로 점거… 이사회 의장-사외이사 등 8명, 두차례 진입 시도끝 물러서
오후 5시 “이사회 무산” 공식발표

13일 낮 최고기온이 섭씨 39.7도를 기록한 경북 경주시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와 그 앞은 “결사반대”를 외치는 사람들로 더 뜨거웠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건설 중단에 반대하는 한수원 노동조합원과 원전이 지어지다가 멈춘 울산 울주군 서생면 주민이었다. 이날 예정된 한수원 이사회를 무산시키려는 이들과 성사시키려는 한수원 이사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 무산된 두 차례 진입 시도

이사회 개회가 예정된 오후 3시에서 2분 정도 지났을 무렵 승합차에 탄 조성희 한수원 이사회 의장(에너지자원산업발전연구회 이사)을 비롯한 사외이사 7명이 본사 1층 현관 앞에 도착했다. 조 의장과 사외이사들은 이사회장인 11층으로 올라가려고 했지만 현관 앞과 로비에 모인 한수원 노조원 150여 명에게 가로막혔다. 이들은 이날 오전 5시 반경 1층 로비와 11층 이사회 회의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현관 유리에는 ‘폐쇄’라고 쓰인 종이를 붙였다. 11층 이사회장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는 지하와 2층을 비롯한 4곳에 노조원들을 배치해 사외이사들의 진입을 원천봉쇄했다.

조 의장은 “법에 의해 소집된 이사회에 이사들이 참석하는 것은 충실 의무에 따른 것”이라며 “노조와 주민들의 의견을 이사회에서 충분히 논의하겠으니 비켜 달라”고 말했다. 현관 앞에 버티고 선 김병기 노조위원장은 “대한민국의 에너지 백년대계를 위해 이사회를 열지 않았으면 한다”고 저지했다. 노조가 준비한 스피커에서는 노동가를 비롯한 운동가요가 크게 흘러나와 양측의 대화를 집어삼킬 정도였다. 일부 노조원은 사외이사들을 향해 “돌아가”라고 외쳤다. 흥분한 몇몇 노조원은 사외이사들과 몸싸움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대치는 15분가량 이어졌다. 오후 3시 17분 사외이사들은 승합차에 올라 현관 앞을 벗어나 정문을 빠져나갔다. 일단 상황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오후 4시 40분경 사외이사들의 승합차는 다시 현관 앞에 도착했다. 조 의장과 사외이사들은 본사 재진입을 시도했지만 노조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5분 뒤 조 의장은 “이 상황에서 오늘 이사회가 열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하며 철수했다. 노조 일각에서는 “본사 밖 제3의 장소에서 이사회가 열리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5시경 한수원이 ‘이사회가 무산됐다’고 공식 발표하자 노조도 농성을 풀었다.

○ 폭염 속 거리에서 점심 먹으며 반대집회

본사 현관 앞에서 노조와 사외이사들이 대치를 예비하고 있을 무렵 정문 앞 도로에서는 서생면 주민 400여 명이 폭염 속에서 반대집회를 이어갔다. 이날 오전 8시 반경 전세버스 9대에 나눠 타고 도착한 주민들은 역대 최고의 7월 더위에 거리에서 점심을 먹으며 반대를 외쳤다.

이들은 원전 건설 중단 계획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 현장에 적막감만 돌고 있는 서생면 주민들은 지역 경제가 침체될 것을 가장 우려했다. 또 원전 건설에 따른 지역발전기금도 받지 못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주민대책협의회 이상대 위원장(65)은 “소통을 중시한다는 새 정부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유치한 신고리 5, 6호기를 일방적으로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 이 위원장은 이날 오후 2시경 이관섭 한수원 사장과 본사 부속건물인 ‘어울림관’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 사장은 “빠른 시일 내에 제대로 된 공론화를 끝내고 신고리 5, 6호기 공사가 재개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위원장은 “이사회가 공사 중단을 결정하면 주민의 생존권이 위협받기 때문에 절대 안 된다”고 맞섰다.

○ “구조조정 우려”, 한수원 노조

이날 이사회를 무산시킨 한수원 노조는 원전 건설이 중단될 경우 장기적으로 사측이 인력 구조조정을 제시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는 상급단체가 없는 기업별노조다. 2001년 한국전력에서 분사한 뒤 2005년 상급단체 가입을 묻는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했지만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모두 과반 득표에 실패해 부결됐다. 2015년 대의원대회를 거쳐 민주노총 가입을 재추진했지만 다시 부결됐다. 고학력자가 많은 노조원들은 양대 노총이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가입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한수원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지난해 기준)은 약 8969만5000원이다. 노조 가입 대상인 7529명 전원이 노조에 가입해 있다.

경주=정재락 raks@donga.com·구특교 / 유성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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