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한수원과 ‘원전건설 중단’ 사전협의 안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4일 03시 00분


[문재인 정부 ‘脫원전’ 가속]한수원 이사회 회의록 공개
이사들 “협조공문만 보냈을 뿐 설계중지도 보고 안돼” 비판
‘시공업체들, 兆단위 손배소’ 우려도

산업통상자원부가 한국수력원자력에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건설을 일시적으로 중단해 달라고 협조요청 공문을 보내면서 한수원 경영진과 사전에 협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한수원 내부에서는 원전 시공업체들이 조 단위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김정훈 의원(자유한국당)이 공개한 ‘한수원 제5차 이사회 회의록’에 이 같은 내용이 나온다. 이 회의록에 따르면 7일 열린 5차 이사회에서 A 이사는 B 이사에게 “정부에서 (일시 중단 협조요청) 문서가 오기 전 경영진들과 사전 협의가 있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B 이사는 “없었다”고 대답했다. 이어 A 이사는 “사전 협의 없이 공문을 보냈다는 말인가”라고 되물었고, B 이사는 “예”라고 말했다. B 이사는 한수원 소속으로, 그의 답변은 정부가 원전 건설 중단에 대해 한수원과 논의하지 않았다는 정황으로 비친다.

대화 내용을 듣던 C 이사는 “신고리 5, 6호기도 복잡한 게 다른 말을 꺼내기조차 조심스럽지만, 5월 20일 한수원에서 (경북 울진군) 신한울 원전 3, 4호기 종합설계 용역 중지를 한국전력기술에 통보했다”며 “이 또한 보고받거나 알지 못한 사항이다”라고 말했다. 원전 건설 중단에 대해 제대로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C 이사는 “종합설계 용역 중지는 경우에 따라 원전 건설 중단 조치로 해석할 수 있는 중요한 사항인데, 이런 사항은 최소한 이사회에 보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시공업체들이 향후 조 단위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우려의 말도 나왔다. 회의에 참석한 한 이사는 “만약 두산중공업 등 기업들이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에 대한 손실, 향후 공사를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두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질문하자 다른 이사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액수는 조 단위가 넘어갈 것”이라며 우려했다. 이사진의 대화를 듣던 한수원 관계자는 “소송 비용은 모두 회사에서 부담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수원은 이미 공사 일시 중단으로 인한 업체들의 피해액을 검토하고 있다. 당장 일시 중단으로 현장 기자재를 유지 관리하는 데만 1000억 원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신고리 원전 5, 6호기 사업비 가운데 이미 집행된 비용은 1조5693억 원, 계약 취소에 따른 손해배상 비용을 9912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세종=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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