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마이크 쥔 손을 눈가에 갖다대더니 양 눈을 추켜올렸다. 며칠 전, 한국의 한 신인가수 그룹이 브라질의 TV 버라이어티쇼에 출연했다 겪은 일이다. 진행자 하울 질은 이런 제스처 외에도 “아시아인들은 대답을 짧게 한다”거나 “눈을 좀 크게 떠야 하지 않겠느냐” 등의 발언을 유머랍시고 한껏 쏟아냈다. 먼 곳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가수의 팬과 한국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진행자를 향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대중문화 속 타 문화에 대해 편견 섞인 표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긴 하다. 툭 튀어나온 뻐드렁니와 어눌한 영어, 매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조잔한’ 행동까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1962년)에는 주인공 홀리(오드리 헵번)의 아파트 이웃인 ‘미스터 유니오시’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 우스꽝스러운 일본인 캐릭터가 영화의 ‘옥에 티’다. 이 역은 심지어 동양인이 연기하지도 않았다. 제작진은 동양 배우를 캐스팅하는 노력 대신 백인 배우가 분장하는 ‘쉬운’ 방법을 택했고, 그 때문인지 사소한 제스처까지 동양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적인 표현이 적잖다. 오죽하면 훗날 감독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배역을 바꾸고 싶다. 후회되는 선택”이라고 털어놨을 정도다.
인종 민족 종교 성에 따른 편견을 경계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세계적인 화두가 되면서 문화 콘텐츠 업계도 자정 노력을 펼치고 있다. 영화나 캐릭터를 만들 때 인종이나 여성에 대한 편견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꾀하는 월트디즈니사가 대표적이다. 디즈니는 매들린 렝글의 동화 ‘시간의 주름(A Wrinkle in Time)’을 실사 영화로 제작하면서 흑인 소녀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화제가 됐다. 그뿐 아니다. 역시 제작 예정인 다른 영화에서는 산타클로스 역을 흑인 배우가 맡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다양한 국가에 소비자를 가진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영리하게 변화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의미 있는 시도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얼마 전 MBC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에서는 꾸란을 배우의 발밑에 두고, 비키니 차림의 여성에게 히잡을 씌웠다가 국내외 이슬람교도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제작진이 “아랍 및 이슬람 문화를 희화하거나 악의적으로 왜곡할 의도는 없었다”고 공식 사과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국내에서의 인종 혹은 타 문화 차별 논란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우리가 잘못한 경우에는 논란이 쉽게 사그라지는 경우가 많아 그렇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방송계 해프닝이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이 우스꽝스러운 흑인 분장을 하고 등장했다가 가나 출신 방송인에게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은 게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한국 신인가수에 대한 인종차별 사건 이후 국내 누리꾼들은 발끈했다. 문제는 브라질을 향해 역시 혐오와 차별적 발언을 쏟아낸 이들도 적잖았다는 거다. 한국 케이팝 소식을 전하는 한 외국 웹사이트에는 ‘못사는 나라 주제에 인종차별이라니’ ‘이게 바로 브라질이 제3세계인 이유’ 등의 브라질을 비하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물론 진행자 하울 질의 몰상식한 발언이 사람들을 먼저 자극했지만 우리 역시 너무 자연스럽게 차별적 발언을 쏟아낸 게 사실이다. 이번 일이 우리가 상대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행동하는지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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