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의 둔촌주공아파트는 1980년 태어났다. 지금은 노후화된 시설 탓에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이 많지만 한때는 깨끗하고 정갈한 아파트였다. 4개 단지에 5930채가 지어져 서울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다. 37년의 세월을 뒤로 한 채 지난달 20일부터 재건축을 위한 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됐다. 6개월간의 이주가 마무리되면 둔촌주공은 지하 4층∼지상 35층, 1만1106채의 미니 신도시급 아파트 단지로 다시 태어난다.
이 아파트와 헤어질 준비를 하는 이가 있다. 잡지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를 펴낸 이인규 씨(35·여). 이 잡지를 통해 조만간 사라질 이곳의 풍경과 그 안에 담긴 추억을 기록해 담고 있다. 이 씨는 이 아파트에서 태어나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살았다. 어릴 때 이곳의 상징과 같은 기린 미끄럼틀을 즐겨 탔고 겨울이면 단지 내에서 눈싸움을 하곤 했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뒤에도 늘 이곳을 그리워했다.
고향이 사라진다는 생각에 마음 아팠던 그는 ‘사랑하는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찍는’ 심정으로 둔촌주공의 곳곳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2013년 출간한 첫 번째 잡지에서 그는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을 예쁘게 잘 담고, 슬프고 아쉽지만 정성껏 배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이제 정말 헤어짐이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오랜 기간 이별을 준비해 온 그는 조금 덜 슬프지 않을까.
모든 이별은 슬프지만 준비 없이 마주치게 된 이별은 특히 더 그렇다.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영화 ‘사랑의 추억’은 이를 잘 보여준다. 주인공은 남편과 함께 해변으로 휴가를 떠난 중년의 여성. 그가 해변에서 쉬는 동안 해수욕을 즐기던 남편이 실종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 여전히 남편의 넥타이를 고르고 ‘상상 속 남편’과 대화를 나눈다. 유부녀인 자신에게 새로운 남자를 소개하는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찾아간 해변에서 주인공이 남편처럼 보이는 남성을 발견하고 그를 향해 뛰어가면서 영화는 끝난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내내 주인공은 달리지만 남성과의 거리는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사람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리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의 심리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 같아서다.
올여름, 기자도 두 번의 이별을 겪었다. 친했던 두 사람이 곁을 떠났다. 한 사람은 새로운 꿈을 찾아서, 다른 사람은 행복해지고 싶어서 떠났다.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었지만 옆이 텅 비어버린 것처럼 허전했다. 생각보다 긴 시간을 함께했고, 이제 서로 다른 시간을 보낼 생각에 슬펐다. 그나마 여름이라 다행이었다. 뜨거운 태양이 오래 땅 위에 머물며 우울해진 마음을 바짝 말려줬다.
사실 우리는 매일 헤어지면서 산다. 1분, 1초가 흐를 때마다 현재가 과거로 떠나간다. 사소한 만남과 헤어짐은 일상에서 반복된다. 좋아하던 단골집이 없어지거나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도 상실감에 빠진다. 그럼에도 왜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슬픔에 익숙해지지 못하고 마주칠 때마다 늘 허둥거리게 되는 걸까.
심리상담사 선안남의 말처럼 “한 번 이별했다고 해서 다음 이별이 결코 쉬울 수 없다.” 결국 모든 이별은 연습이 아닌 실전이다. 진부하지만 내일 헤어져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오늘을 보내는 것만이 정답이다. 사랑하는 만큼 지금 더 많이 표현하고 아껴줘야 한다. 둔촌주공을 떠나보내는 이 씨처럼. 그리고 이미 늦어버린 이별에 힘들어하는 사람도 뜨거운 이 여름에 조금은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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