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은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과 함께 ‘4대 권력기관’으로 꼽힌다. 세금을 걷는 국세청이 권력기관으로 꼽히는 이유는 기업 세무조사 권한에 있다. 특히 5년에 한 번 돌아오는 정기 세무조사보다 탈세 혐의가 의심되는 기업을 조사하는 특별 세무조사의 위력은 막강하다. 하지만 역대 정부에서 기업 세무조사는 늘 반발과 뒷말이 따랐다. 기업이 처한 정치적 상황에 따라 무리한 조사를 진행했다거나, 눈 딱 감고 봐줬다는 식이다.
세무 당국은 이번에 그간 뒷말이 무성했던 세무조사들을 대상으로 정치적 배경이 있었는지를 따져볼 예정이다. 국세청 측은 “조사 건수와 기한을 한정짓지 않고 외부 위원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모두 다시 들여다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어떤 세무조사가 정치적인 의도를 가졌는지를 조사하는 과정에 정치적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번 조치가 의도와 달리 새로운 논란의 불씨를 남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91년 현대그룹에 대해 실시한 세무조사는 대표적인 ‘정치 세무조사’로 꼽힌다. 국세청은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대선 출마를 준비하자 현대그룹에 1361억 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23곳 동시 세무조사, 이명박 정부의 태광실업 세무조사 등도 정치적인 목적이 담긴 세무조사로 거론된다. 박근혜 정부 때엔 롯데, 효성, CJ 등 이전 정권과 관계가 좋았던 기업들이 타깃이 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2015년 카카오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도 인터넷 포털 다음의 뉴스편집 방향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국세청은 이런 의혹을 털어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한승희 국세청장은 17일 “과거에 대한 겸허한 반성 없이는 국민이 바라는 미래로 갈 수 없다”며 “과거 정치적 논란이 있던 세무조사에 문제가 없었는지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어떤 세무조사를 선정하느냐에 있다. 세무조사의 탈(脫)정치화를 빌미로 오히려 정치적 보복에 나서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증 대상을 선정할 국세행정 개혁 태스크포스(TF)의 ‘세무조사 개선 분과’ 위원 가운데 개혁적인 인사가 많다는 지적이 벌써 나온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을 역임한 구재인 한국조세연구포럼 학회장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국세청 측은 “각 분과위원은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특정 분야 출신으로 편중하지 않았다”며 “점검할 세무조사 선정도 회의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이번 회의에서 부유층의 탈세 방지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대기업이나 대자산가의 변칙 상속 증여를 막기 위해 국세행정 개혁 TF 내에 ‘조세정의 실현 분과’를 설치한다. 여기에선 역외탈세 등 지능적이고 악의적인 탈세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는다. 국세청은 해외금융계좌 신고 대상을 기존 10억 원 이상에서 5억 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현금영수증 전자세금계산서 발급도 늘릴 방침이다.
일반 납세자들에게는 납세 편의를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에 나선다.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중소기업에 대해선 세무조사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조사를 유예해 준다. 세무조사를 할 경우 사전에 통지해 주는 기간도 기존 10일 전에서 15일 전으로 늘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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