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 기강잡기 나선 이낙연 총리 “農피아 넘어 각종 官피아 잘라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1일 03시 00분


살충제 계란 계기로 행정적폐 질타 “유착관계 끊고 상인-농가도 엄벌”
‘일상적 내치는 책임총리 몫’ 강조… “수능 절대평가 속도조절 바람직
김상곤 신념 상관없이 내 책임분야… 세출 구조조정, 눈먼 보조금 줄일것”

“(이번 살충제 계란 파문은) 농(農)피아(농업 행정+마피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각종 관피아의 존재를 냉정하게 자를 필요가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0일 본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관피아(관료+마피아) 문제를 언급했다. ‘살충제 계란’ 파동에서 제기된 농업 분야에서의 유착 문제를 특정 분야만 보지 않고, 공직사회 전반의 문제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총리가 살충제 계란 파문을 계기로 연일 공직사회의 기강을 다잡는 데 주력하고 있다. 19일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를 방문해서는 “친환경인증이나 해썹(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 같은 식품안전 보장 장치와 관련된 유착 등 비리는 의법처리를 통해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총리실 간부회의에선 “소극 행정이나 유착 등의 비리는 농정(農政)의 적폐다. 먹거리로 장난하는 일은 끝장내라는 것이 국민의 한결같은 요구”라며 농피아 문제를 거듭 거론했다. 이 총리는 20일에는 비공개 일정만 수행할 계획이었지만 공직사회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국무조정실장이 주재하기로 한 간부회의에 직접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피아를 언급한 이유는….

“농피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관피아 전반의 문제, 즉 유착 문제가 있다. 전문성이라는 미명 아래 여러 곳에서 유착 관계가 형성돼 있을 것으로 본다. 이런 것들 때문에 공직사회의 변화가 더디고, 전례답습주의가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구체적인 조사 시점과 주체를 언급하기는 적절치 않지만 각 부처가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총리는 살충제 계란 파문의 후속 조치도 직접 챙기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일례로 농약 등 금지된 약품을 제조한 업체뿐만 아니라 유통한 상인, 사용한 농가까지 엄벌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살충제 사용을 부추기는 공장식 축산환경 개선을 위한 중장기 대책을 마련할 것도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살충제 계란 파문에 대처를 못 한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 대한 해임 요구가 거센데….

“예를 들어 보건복지부 장관의 경우 어떨 때는 보건 전문가가 임명되고, 이번 박능후 장관처럼 복지 전문가가 오는 경우도 있다. 식약처도 식품 또는 의약품 전문가가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엔 의약품 전문가가 와서 식품 분야에 익숙지 않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총리가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키우며 ‘책임총리’ 구현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들어 책임총리는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다고 보는가.

“국정에는 세 가지 부류가 있다. 첫째 대통령이 총괄하는 분야(외교안보통일)로 이 부분은 총리가 돕기만 하면 된다. 둘째, 내치 분야지만 대통령이 관심을 갖는 영역(일자리, 4차 산업, 저출산 등)으로 총리는 실무적 이행을 담당하게 된다. 세 번째가 일상적 내치 영역으로 총리가 최종 책임을 지는 부분이다. 이번 살충제 계란 파문은 그 세 번째 영역으로 제가 목소리를 높이고 챙겨야 하는 부분이다.”

―책임총리가 책임져야 할 대표적 사례가 있다면….


“수능 절대평가 도입은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 김상곤 부총리(교육부 장관)의 평소 신념과는 상관없이 제가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다. 교육행정의 안정을 위해 단계적 확대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 총리는 각종 부처 회의에서 수능 절대평가 도입 속도조절론을 강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기조보다 후퇴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는데, 이날 책임총리의 소신대로 처리하겠다는 뜻을 강조한 것이다.

―책임총리는 보이는데 책임장관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일각에선 ‘김동연(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패싱’이란 말도 나오는데….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공개되는 부분은 단 몇 %에 불과할 수 있다. 김동연 부총리뿐만 아니라 모든 장관이 굉장히 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각종 복지 확대에 비해 증세 등 재원 조달책이 부족한데….

“내년도 예산안에서 세출 구조조정이 생각보다 많을 수 있다. 당정 협의대로 각종 세출 삭감 요인을 찾겠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삭감이 주로 이뤄질 것이다. 이른바 적폐 예산, 정권적 이유로 책정된 예산, 관행적으로 이뤄진 눈먼 보조금 등에 대한 세출 조정이 있을 것이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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