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韓 무역적자 2배” “FTA 탓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3일 03시 00분


합의 없이 끝난 한미FTA 첫 만남
韓 “협정 효과 공동조사” 제안… 美 반응 없어… 장기화 가능성
김현종 본부장 “우리 페이스대로 할것”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두고 벌인 한국과 미국의 첫 만남이 별다른 의견 일치 없이 끝났다. 한국 측은 한미 FTA의 효과에 대한 양국의 공동조사가 선행되지 않으면 어떤 합의도 할 수 없다며 FTA 개정을 요구한 미국 측을 압박했다. 한미 양국이 첫 만남부터 8시간 동안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면서 한미 FTA 개정 논의는 마무리 시점을 장담하기 힘든 장기전 양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
  
양국 수석대표, 영상회의로 ‘상견례’ 22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미 양국 대표단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회의를 갖고 있다. 미국 측 수석대표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 대표(화면 왼쪽)는
 이날 방한하지 않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화면 오른쪽)과의 첫 만남을 영상회의로 대체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양국 수석대표, 영상회의로 ‘상견례’ 22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미 양국 대표단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회의를 갖고 있다. 미국 측 수석대표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 대표(화면 왼쪽)는 이날 방한하지 않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화면 오른쪽)과의 첫 만남을 영상회의로 대체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한국은 2012년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적자의 원인은 한미 FTA가 아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22일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시작하자는 미국의 요구에 이렇게 공식 답변을 내놨다. 신뢰할 만한 근거 없이는 미국 측의 어떤 요구에도 응하지 않겠다며 기선 제압에 나선 것이다.

미국 측의 요구로 한미 FTA 발효 후 5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개최된 공동위원회 특별회기는 양국의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끝났다. 김 본부장은 “우리 페이스대로 답을 갖고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한미 FTA를 개정하겠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가 다시 확인된 만큼 앞으로 더욱 거세질 미국의 공격을 방어해야 할 숙제를 안게 됐다.

○ 탐색전으로 끝난 첫 만남

한미 양국 대표단은 이날 오전 8시 10분부터 30분간 김 본부장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영상회의, 이후 8시간 동안 고위급 대면회의를 이어갔다. 양측은 준비한 자료를 설명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상대방 자료를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논리와 근거를 검증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고 소개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지적한 문제를 재차 제기했다. 한국이 FTA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으며,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가 2배로 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서는 FTA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한국은 공동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제안한 ‘FTA 시행 효과에 대한 양국 공동조사’를 받아들이라고 거듭 요구했다. 평행선을 달린 양국 대표단은 결국 합의안을 하나도 이끌어내지 못한 채 회의를 마쳤다.

애초 이날 회의에서 결실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은 많지 않았다. 미국 측 수석대표인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방한하지 않아 양측이 실시간으로 회의를 조율하거나 미국이 한국의 새로운 제안에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김 본부장이 영상회의 직후 국회 출석을 이유로 자리를 떠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다만 양측이 서로의 생각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는 걸 성과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양측 수석대표가 빠진 회의이기 때문에 무게감이 떨어졌다. 탐색전 정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이 차기 회의 일정을 정하지 못하면서 미국이 제안한 공동위원회 특별회기는 이날 회의로 종료됐다. 미국 측의 제안이 없다면 다음 회의는 내년 초로 예정된 ‘제5차 한미 FTA 공동위원회’로 열린다.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자국 입장이 정리되면 언제라도 한국에 회의 재개를 요구할 수 있다.

○ 논의 장기화 가능성 크다

한국은 미국 무역적자의 원인이 한미 FTA가 아니라 미국의 낮은 저축률과 한국의 경기침체로 인한 수입 감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측 주장을 100% 신뢰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이다. 김 본부장은 “미국 대표단이 귀국한 뒤 이에 대한 답변을 보낼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한국 측의 주장을 빠른 시일 내에 깊이 있게 검토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공동조사 제안에 응할 경우 최소 6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한미 FTA 개정 작업이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전 통상교섭본부장)는 “공동조사 제안이 한국으로서는 꼭 필요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는 만큼 미국은 최대한의 기한 단축을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 이후 미국에서는 안보 문제와 FTA를 연계해 한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라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한미 FTA의 폐기에 대해서는 한국은 물론 미국도 이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김 본부장은 “미국과 한국 모두 폐기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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