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 아이를 키웠다.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컸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라 풍족하게 키우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작은 돈이라도 알뜰하게 쓰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아주 어릴 때는 천사 같은 미소에 넘어가 사달라는 대로 다 사주었다. 그래봤자 동네 구멍가게에서 파는 사탕이나 아이스크림 정도였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용돈을 주었다. 휴대전화 요금이 너무 많이 나오면 혼을 내기도 했다.
문제는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벌어졌다. 그전까지 내 방식에 동의해주던 아내가 반기를 들었다. 나는 아직 본격적인 경제활동을 해 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 너무 큰돈을 한 번에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는 성인이 된 만큼 스스로 알아서 자율적으로 쓰도록 해야 한다면서 한 달에 한 번 목돈을 주자고 주장했다. 그래야 자신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모자라면 낭비에 대해 반성도 하고, 정 돈이 더 필요하면 스스로 ‘알바’를 해서라도 돈을 벌어보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졸지에 나는 보수적 아빠로, 아내는 진보적 엄마로 나뉘었다.
지방자치, 특히 재정 분권을 둘러싼 최근 논의가 딱 그런 모양새다. 한쪽은 이제 지방자치단체를 믿고 나누어 주자고 한다. 반면에 다른 쪽은 여전히 지자체를 전적으로 믿고 맡기기에는 시기상조이니 중앙정부가 통제해야 한다고 한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물론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주장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내의 말처럼 믿고 맡겨야 어른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는 1995년에 부활했다. 각 지자체 입장에서 보자면 어느덧 20대 청년이 된 셈이다. 그런 만큼 이제는 자신의 책임하에 주민을 위한 정책을 펴야 한다. 그런데 스스로 벌어 쓰는 돈이 예산의 53.7%에 불과하다. 즉, 늘 돈이 부족한 것이다. 지방의 단체장과 의원들을 만나보면 ‘자체 수입이 적은 데다 그나마 지출할 수 있는 돈도 각종 국고보조사업으로 사용처가 정해진 경우가 많아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호소한다.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23년째가 됐음에도 여전히 중앙정부에 의존하고 자립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로지 돈 때문이다. 자립을 못하는 것은 경제 분야만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경제적 의존이 심리적 의존으로까지 확장된다는 점이다. 재정 자립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에 대한 재정 의존은 지방재정의 자유로운 운용까지 가로막는다. 지자체로 하여금 지방 스스로 지역 특성에 맞는 경제 전략을 수립하는 게 아니라, 국가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시책사업만 바라보게 만든다.
큰아이가 취업을 하고 첫 월급을 타오던 날이 기억난다. 그동안 키워줘 고맙다며 엄마한테 월급의 반을 쾌척(?)하고, 나머지 반은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시작해 온 가족들에게 선물을 사서 돌렸다. 감격에 들뜬 아내의 목소리는 며칠을 갔다. 나 역시 자식이 책임을 다하는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우리 사회가 성년이 된 지방자치의 자립을 여전히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자치단체의 역량 부족을 이유로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안다. 그러나 언제까지 품 안에 꽁꽁 묶어둘 수 없는 일이다. 다소 시행착오를 겪을지라도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할 때, 자식의 진정한 인생이 시작된다. 전국 243개의 자치단체가 저마다 품고 있는 지역공동체의 꿈과 발전을 위해 이제는 홀로서기를 적극 지원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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